[김국헌의 직필] “호위무사라고? 문제는 사법개혁이야!”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겠다.” 오늘 한국 검찰의 오만함, 민낯을 이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낸 말이 없다. 사표를 내고 잠적한 채동욱 검찰총장은 감찰조사도 안 받겠다고 하면서 버티고 있다.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급료를 받으며 국가에 대하여 무정량(無定量)의 근무의무를 진 공무원으로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군인으로서 무단 전장이탈은 사형이다.
국정원 개혁을 이야기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정원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국정원 권력의 근원은 대통령 독대이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이 관행은 거의 없어졌다. 민주당은 대공수사권을 없애자고 하나, 대공정보와 방첩, 수사는 상호 연결되어 있다. 신건 전 국정원장에게 물어보라.
문제는 사법개혁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길항(拮抗)하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1987년 체제에서 다급하게 이루어졌던 사법개혁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어느 법학자는 “법원의 진정한 모습은 ‘피라미드’와 같은 것이 아니라, 독립된 법관들이 점점이 모여 빛나는 ‘성단’과 같은 것이다. 대법원에 진정으로 요구할 것은 상급기관으로서 하급기관을 잘 통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이 왜 Justice(대법관)인지를 증명해주는 판결, 우리로 하여금 권위를 인정하게 만드는 지혜와 학식이다.”(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역사비평사, 2010, 922쪽) 이 얼마나 정확하고 아름다운 말인가? 사법개혁은 이 명제가 갖는 의의를 철저히 침잠(沈潛)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법원과 검찰의 법과 제도, 관행, 인사 곳곳에 미쳐야 한다.
위의 학자는 나아가, “검찰의 문제로 정치적 보수주의, 권위주의, 엘리트주의, 집단적 폐쇄성 등 검찰구성원의 비민주적 의식과 조직문화가 곁들여짐으로써, 검찰은 더욱 국민과 유리된 권력집단으로 인식되었다.… 우리나라의 대검찰청과 같은 조직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결코 국제적 보편성을 가지지 않는다. 검찰총장과 대검찰청은 ‘전국 검찰은 하나이며 단일하다’는 정신을 강화한다. 개념적으로 남용된 우리의 검사동일체 원칙은, 마치 그 속에 검찰 고유의 신성한 조직원리와 문화와 집합적 이익이 있으며,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모든 검사가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을 부추긴다.”
채동욱 사태가 불거진 이 시점에서 더욱 뼈저리게 와닿는 지적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저자는 검찰총장 및 대검찰청을 폐지하여 전국 검찰조직을 고등검찰청 단위로 재편할 것 등을 제의하고 있다.(앞의 책, 926~928쪽)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가 과연 온당한 것인가도 논의해 보아야 한다. 영국에서 경찰은 검찰(Crown Prosecution Service)의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하며 검찰은 경찰의 수사에 기초하여 기소여부를 결정하고 기소절차를 진행한다. 독일은 기소법정주의를 택하고 있다. 우리 제도가 유일한 것이 아니다. 우리 헌법정신이 영미의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유독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일제의 잔재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볼 때가 되었다.
국회, 정부, 법원의 제도와 운용에서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사법개혁에 관한 문제는 그동안 일종의 법조귀족들에게 맡겨져 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야말로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여 심중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문명개화(文明開化)된 사회로 가는 첩경(捷徑)이다. 미국 TV에 나오는 Peoples’ Court를 보라. 이것이 정상(正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