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박정희-백선엽-박근혜

전쟁기념관에는 국군 장교와 인민군 병사가 부둥켜 안고 있는 ‘형제상’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군 최고의 전략가’ 이병형 장군을 전쟁기념사업회장으로 임명해 전쟁기념관을 완성시켰다. 노태우 대령이 8사단에서 연대장을 하던 때 이병형 장군은 직속상관인 5군단장이었다. 노태우는 하나회 핵심으로 군의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 중의 하나이지만 군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선배가 어느 분인가에 대한 생각은 정확히 가지고 있었다. 이병형 장군은 처음 “잘못된 선택이 아닙니까?”하고 고사하였으나 노 대통령이 “당연히 장군께서 맡아서 해주셔야지요”라며 강청하는 바람에 전쟁기념관 건립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명칭부터가 문제였다. 영어로 war memorial 이라고 하면 딱 들어맞으나, 우리말에는 그만큼 적합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우선 ‘전쟁기념관’이라고 하였는데 그 후로도 대체할 용어를 발견하지 못하여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대통령은 전쟁기념사업회장은 장관급으로 예우를 해드리도록 하였다. 그러다 보니 사무총장은 차관급, 본부장들은 차관보급으로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전쟁기념관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정성은 남달랐다. 무슨 일이든 대통령이 대강의 지시만 내리고 시행은 관료들에 맡겨두어서는 탁월한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 외국에서는 기념비적인 건물에는 이를 기획한 사람의 이름이 붙는다.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퐁피두 대통령의 의지와 발상이 담겨져 있다. 전쟁기념관의 형제상은 ‘민족상잔의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이병형 장군의 비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병형 장군은 육군 장교의 필독서인 <대대장>을 저술하였다. 로마시대부터 대대는 기본전술단위였다. 김석원 장군이 일본도를 들고 진두지휘하고 백선엽 장군이 사단 장병의 선두에 선 것은 전세가 워낙 위중한 때였기 때문이었고 통상적으로는 사단장이 전선에 나서지는 않는다. 대대장은 전투를 한 눈에 보면서 지휘하기 때문에 전투의 실상을 제일 잘 안다. 국군 장교인 형과 인민군 병사인 아우가 전장에서 조우한 비극을 형상화한 ‘형제상’은 전쟁의 비참함, 특히 민족상잔의 비극을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1950년 인민군의 9월 공세에서는 남한지역에서 징집한 의용군이 대거 투입되었다. 당시 호남과 충청 지역에서는 집안에 이러한 희생자가 한두 명쯤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들은 인민군으로 싸웠으니 대한민국으로부터는 아무런 보훈 혜택도 받지 못한다.

정전 60년이 지나 전쟁의 기억이 거의 스러져가고 있다.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에 대한 보훈처의 있을 수 없는 홀대와 무례는 바로 이것을 상징한다. 백선엽 장군은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은인이다. 박정희가 여순반란사건에 연루되어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군내 남로당 조직을 모두 불기로 하고 살려준 분이 정보국장 백선엽 대령이었던 것을 아는가? 백선엽 장군은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결초보은(結草報恩)해야 될 분인 것이다.

대통령의 언행은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저도(楮島)에 휴가를 갔으면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듯이 제승당(制勝堂)을 돌아보고 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보좌관들은 생각이 미치지 못했겠지만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삼도수군통제사의 본영인 제승당에 들르는 것이 마땅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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