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백선엽 전 교통부장관’에서 엿보는 역사인식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원로회의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한?자문을 구하는 자리를 보도하는 동아일보 기사에? 백선엽 장군을? ‘전 교통부장관’ 이라고 소개한 것을 보았다.? 한국군 최초의 육군대장으로서 두 번의 육군참모총장을 지냈고, 예편 후에는 주불대사? 등을 지내다가, 박정희 정부에서는 교통부장관도? 지냈으니 그 소개가 틀린 것도 아니다.
미군들과 협조하며, 간혹 팽팽한 협상을 하다보면? 외교관이나 비즈니스맨들과는 달리, 군인들끼리는 역시 서로 통하는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고, 이 점이 대화와 소통에 도움이 되던 것을 기억한다. 그 중에 한 예화다.
어느 자리에서 “요새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역사를 잘 모른다. 미국에서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들은 맥아더가 2차대전의 영웅이고, 퍼싱은 1차대전에서 미군을 이끈 ‘general of the armies’이며, 셔먼은 남북전쟁에서 북군을 이끈 장군이라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더니, 카운터 파트인 Dunn 장군은 파안대소하면서, “요새 미국 사람들은 그들이 어느 때 장군들인가를 구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예 그들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조차 별로 없을 것이다”고 하여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미군들에게도 General Baik 은 ‘한국전쟁의 영웅’으로서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이다.? 맥아더, 릿지웨이와 같은 장군들이 이미 오래 전에 역사의 인물이 된 지금, 미군들이 백선엽 장군에게서 살아 있는 영웅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세대의 차이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6·25를 살아온 세대에게 백선엽 대장은 이승만 대통령만큼이나 익숙한 분이다. 그를 ‘전 교통부장관’ 정도로 알고 있는 젊은이들을 탓하고 슬퍼할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과 사회교육에 문제점이 없느냐를? 돌이켜보고, 각 분야의? 어른들이 분발하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왜 독도를 저렇게 계속 들고 나오고, 위안부와 징용에 끌려간 분들에게 저들이 말하는 ‘보통국가’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뒤처리를 하고 있느냐를 유심히 보면서, 일본사람들이 역시 개인적으로는 성실하나, 전체적으로는 아직 덜 깨이고, 역사교육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민의 의식과 인식 가운데 남아 있고, 현재의 사고와 판단의 기준이 되며, 미래의 꿈과 비전의 나침반이 될 때, 그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을, ‘전 교통부장관’ 정도로 기억하는 집단적 치매로부터 빨리 깨어나지 못할 때, 선진일류사회는 고사하고, 날로 부상하는 중국, 일본 사이에서 우리 후손들이 과연 21세기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