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고난’ 박노해 “장하다 하지만 잊지 마라”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나 누구나 갈 수 없는 영광의 길이다

폭설이 내린 산을 오른다
척박한 비탈에서 온몸을 뒤틀어가며
치열한 균형으로 뿌리 박은 나무들이
저마다 한두 가지씩은 부러져 있는데

귀격으로 곧게 뻗어 오른 소나무 한 그루
상처 난 가지 하나 없는 명문가 출신에
훤칠한 엘리트를 닮은 듯한 나무 한 그루

하지만 나는 금세 싫증이 났다
너는 어찌 된 행운인가
너에겐 폭풍과 천둥 벼락의 시대도 없었느냐
너에겐 폭설도 눈보라의 부르짖음도 없었느냐

나는 눈길을 걸으며 굽어지고 가지 꺾인
고난의 나무들을 눈길로 쓰다듬는다
장하다 하지만 잊지 마라
너는 상처를 그대로 가져가지 마라
지난날의 고난을 그대로 가져가지 마라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마라
오늘은 오늘의 상처로 새로운 과제를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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