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어머니의 새해 강령’ 박노해 “옆도 보고 뒤도 보며 화목하거라”
설날이 오면 어머니는
어린 우리 형제자매를
장작불에 데운 물로 목욕을 시킨 후
문기둥에 세워놓고 키 금을 새기면서
작년보다 한 뼘이나 더 커진 키를 보며
봐라, 많이도 자랐구나
어서어서 자라나거라
함박꽃처럼 웃으며 기뻐하셨다
설날이 오면 어머니는
어린 우리 형제자매를
깨끗이 빨아 다린 설빔으로 갈아 입힌 후
둥근 상에 앉혀놓고 떡국을 먹이며
일 년 내내 부지런히 일해서 모아낸
저축통장을 펴보이며 봐라
우리 집 희망통장이 많이 늘었단다
올해도 열심히 공부해 진학하거라
햇살처럼 웃으며 기뻐하셨다
설날이 오면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형제자매에게
키가 얼마나 더 자랐는지 키 금을 재지도 않고
돈을 얼마나 더 모았는지 통장을 펴보지도 않으시네
올 설날 아침에도 둥근 상에 모여 앉아
떡국을 나누어 먹이시며
올해도 많이 웃고 건강하거라
욕심내지 말고 우애를 키우며 겸손하거라
옆도 보고 뒤도 보며 화목하거라
또 한 해를 살아갈 새해 강령을 선포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