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가을볕이 너무 좋아’ 박노해 “가만히 나를 말린다”

멍석에서 마르고 있는 빨간고추.

가을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 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욕망을,
투명하게 비춰오는 살아온 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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