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은빛 숭어의 길’ 박노해

은빛 숭어, 너는 뉘 손에서…

그 가을 고향 갯가에 노을이 질 때
나는 마른 방죽에 홀로 앉아서
바다로 떨어지는 강물을 바라보았지

숭어들이 눈부신 은빛 몸을 틀며
바다에서 강물 위로 뛰어오르는 걸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그렇게 거센 물살을 거슬러
숭어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몸을 떨며 지켜보고 있었지

가도 가도 어둠 깊은 시대를 달리며
절망이 폭포처럼 떨어져 내릴 때면
그날의 은빛 숭어를 떠올리곤 했었네

가난한 사람들이 벼랑 끝에서 떨어져 내릴 때
인간성이 급류에 휩쓸려 무너져 내릴 때
나는 그 은빛 숭어의 길에 대한 믿음 하나
끝내 버릴 수 없었네

급류로 떨어지는 물기둥 한 중심에는
강력한 상승의 힘이 들어 있어
거세게 떨어지는 중력을 상쇄하는
가벼운 나선의 길이 숨어 있다고,
물질세계가 추락할 때 그 한 중심에는
정신의 상승로가 내재되어 있다고

지금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정점의 시대에
더 높은 인간성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신비한 기회의 길이 내재되어 있다고
나는 은빛 숭어의 길에 대한 믿음 하나
끝내 저버리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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