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나무를 사랑한다면’ 박노해

거친 비바람을 벗하며 살아낸 저 소나무 <사진 이종판 전 육사교수>

3월의 하늘 아래
어린 나무를 심는다

물을 주고 거름 주고 흙을 돋아주고
나무야 나무야 어린 나무야
너에게는 모진 비바람도 피해 가고
타는 가뭄도 병충해도 꼬이지 말고
예쁘게 무럭무럭 자라나거라

마음 모아 기원해 주다가
지금 내가 이 어린 나무를
저주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런 마음도 없다면 무정한 사람이겠지만
그런 말들은 이 나무에겐 저주가 아닌가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서
어찌 나무가 클 수 있겠는가
불볕과 병충해를 이겨내지 않고서
어찌 강건하고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나는 다시 마음을 모아 기원드렸다
나무야 나무야 어린 나무야
네 안에는 그 모든 걸 이겨낼 힘이 있으니

너의 고난으로 더 기품있게 자라나기를
너만의 고유한 길에서 맘껏 푸르르기를
부디 나보다 먼저 죽지만 말기를
나는 그저 뜨거운 믿음으로 애타는 사랑으로
이 지상을 잠시 동행하는 기쁨을 허락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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