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중년 여자의 노래’ 문정희 “그리움도 오기도 모두 벗어버려 노브라 된 가슴”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이상한 계절이 왔다
아찔한 뾰족구두도 낮기만 해서
코까지 치켜들며 돌아다녔는데
낮고 편한 신발 하나
되는대로 끄집어도
세상이 반쯤 보이는 계절이 왔다
예쁜 옷 화려한 장식 다 귀찮고
숨 막히게 가슴 조이던 그리움도 오기도
모두 벗어버려
노브라 된 가슴
동해바다로 출렁이든가 말든가
쳐다보는 이 없어 좋은 계절이 왔다
입만 열면 자식 얘기 신경통 얘기가
열매보다 더 크게 낙엽보다 더 붉게
무성해 가는
살찌고 기막힌 계절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