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아침밥상’ 박노해 “오늘은 먼 길 가는 날”
오늘은 먼 길 가는 날
내 아침 밥상은 3찬
붉은 밑둥의 시금치 나물과
장독에서 꺼내온 김장 김치
그리고 보리 싹과 냉이 된장국
오늘 나설 일에 생각이 많다
먹다 보니 요것들이 말을 한다
붉은 밑둥의 시금치 뿌리가
겨울 보리 싹과 냉이 잎들이
오지독 어둠에 잠긴 김치와 된장이
머리 굴리지 마
욕심 세우지 마
겉멋 부리지 마
단순하게 그냥 가
본질로만 승부해
깊이 익은 김치와 장에서
겨울 보리 냉이 뿌리에서
눈밭의 붉은 시금치 밑둥에서
묵직이 솟아오르는 기운으로
먼 길 나서는 명랑한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