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복 짓는 무당’, 교회를 ‘비니지스 센터’로 만드는 사람은?

상인들을 몰아내는 그리스도. 야곱 조르데스 1650년작 루브르박물관 소장

[아시아엔=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고,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대형교회들이 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대형교회 일부 목사들의 안중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신 황금 면류관만 보이는 듯하다.

요셉과 모세는 오늘날로 말하면 입양아로 자랐다. 그들은 외로움과 억압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순종하며 신앙을 지키고 결국은 이방인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됐다. 다윗은 어떤가? 남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양이나 지키는 사람 같지만 그는 맹수들이 출몰하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허허벌판에서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최고의 돌팔매 프로선수가 돼야 했다.

요셉처럼, 모세처럼 그리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되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비나이다, 비나이다” “잘 살아보세” 하며 기복신앙에 빠진다면 무당을 찾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신적인 신앙으로 막연히 기적만 바라면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소연하는 인생,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없는 종교인의 말로와 다름 아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손을 잡아주길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먼저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라.

집에서든 성전에서든, 혹은 길을 가더라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먼저 내밀어 주시라. 그럴 진대, 당신 입에서는 “예수는 그리스도!” 하는 외침이 자신 있게 나올 것이다.

38년 동안 중풍병에 시달리며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의심덩어리로 살던 베데스다 연못가 병자처럼 내 마음 알아주고 나를 도와줄 사람만 찾아다니다가 쓸쓸한 인생 말로를 맞이할 것인가?

왜 불신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마음을 비우고 언제든 남을 도와줄 준비가 돼있는 사람은 결코 불안하거나 불만을 가질 수가 없다. 반면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는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은 만족할 수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 한 구석은 늘 불신이 쌓여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교만, “하나님이 안 믿어진다”는 의심 그리고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할 지 모르겠다”며 생명도 없는 종교에 심취하는 맹신과 광신이 이 시대를 혼돈에 빠지게 하고 있다.

맹신·광신·집착·방탕·중독···. 거울 앞에 선 당신의 얼굴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고민과 공허와 의심과 슬픔의 얼굴인가 환희와 희망의 그것인가?

사람에게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이끌리는 삶이 우리의 지향점이 돼야하지 않을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 14장 13~14절)

어머니 요게벳의 품안에서 들었던 창세기 3장 15절의 비밀을 회복한 모세는 홍해로 가로막힌 위기 앞에서 담대히 선포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세기 3장 15절)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의 왕자로 궁중의 모든 것을 누렸지만, 사람과 환경을 자기 힘으로 바꿔보려다가 결국 살인자·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호렙산에서 만난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고통받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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