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비극 잊었는가?···‘무한 탐욕’ 해적선에 머물까, ‘사랑 가득’ 구조선으로 옮겨 탈까?
[아시아엔=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우리는 흔히 “너 때문에 죽겠어. 미치겠어” 한다. 또 “세상이 이상하다”고 비명을 지르지기도 한다.
이럴 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진단서가 성경이다. 내가 싫어하는 말로 예수님은 나를 진단하신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한복음 8장 44절)
하나님은 이런 나를 구원하고, 치유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이 세상 누구도 나에게 관심 없다”고 불평하는 대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관심을 바라보라. 내가 연약할 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바라보라.
성경의 핵심을 놓친 이 시대의 교회는 사이비종교의 부동산 목록을 늘리는 먹잇감이 되거나, 문을 닫거나,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성도들 호주머니를 터는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오늘의 교회가 왜 그렇게 됐을까?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장1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6절)
이 시대 교회가 위의 말씀에 과연 따르고 있나? 아니 기억하기는 하는가?
2000년 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 갈보리 십자가 사건이 나의 사건이 될 때 비로소 나는 그의 품에 안기며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포하신 예수님 음성이 들린다면 기적은 내게서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다.
현대 교회는 마치 해적선과 같다. 거기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영혼은 피폐해지고 결국 죽음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그 해적선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복음이고, 구원이다. 해적선에선 성실한 것이 더 문제다. 해적선에서 “잘 살아보세” 하며 열심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다.
해적선의 해적 신분으로 목사가 되는 게 이 시대의 재앙이다. 해적질과 오늘날 교회의 타락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해적선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430년간 애굽 종살이에서 출애굽하여 바로왕의 손아귀를 벗어난 것과 다름 아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다.
해적선에서 빠져나와 구조선으로 갈아타시라. 이 시대의 구조선이 바로 예수님이요, 사랑 가득한 교회다.
세월호 사건을 벌써 잊었는가? 구조선이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다면, 구조선으로 조금만 더 일찍 우리 학생들을 옮겨 태웠다면, 비극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