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선 기독교인···”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얼 어떻게 해야할까?”

거울은 나를 붙잡아두려 해도 내가 거울 앞에 당당히 서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아시아엔=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거울을 바라보고 자신에게 질문해 던져보라. “너는 누구냐?”

아마 십중팔구 얼른 외면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곧 왜 그런지 스스로 답을 발견할 것이다.

본래의 나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예수님의 큰 능력을 받았다. 그런데 그걸 잊은 채 여전히 잔머리를 쓰고. 온갖 유익을 따라 계산하면서 살아간다. 그 모습이 거울에 비춰 있으니 고개를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은 것이다. 대접 받기 원하거든 남을 먼저 대접하라고 한 성경말씀을 ‘황금률’이라고 부른다. 공자도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고 했다. 네가 하기 싫은 걸 남한테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니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틈만 나면 나한테 불리한 건 남한테 떠넘기고 눈앞의 이익을 좇기에 바쁘다. 불안·초조·욕망에 사로잡혀 살다가 어느 날 딱딱한 몸뚱이만 남긴 채 이 세상을 떠난다.

우리로 하여금 小我病的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을 은전 몇푼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가 우리 안에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을 가슴과 영혼에 담고 있다면,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의심없이 받아들인다면, 두려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를 버리고 그 안에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대신 채우면, 모든 일들은 이해되고 욕심·불안·불신 대신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내가 죄인일 때도 나를 한없이 사랑하신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보다 죄를 짓고도 돌이키지 않는 게 진짜 문제인 것이다.

나의 성공과 나의 소원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구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실족하거나 옆길로 빠지는 사람들을 얼마나 더 만나야 바른 길, 제대로 된 길로 당신은 가겠는가? 죽을 때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방황만 하다 제자리서 뱅글뱅글 돌까봐 걱정이다.

다시 한번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정말 누구인가?”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를 떠올려 보시라. 그리고 그의 생애를 따라가 보라. 당신 마음속엔 어느 새 교만이 겸손으로, 원망은 감사로, 그리고 불신·불만은 기쁨으로 바뀌어 당신을 채울 것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라.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혼탁한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는커녕 원인제공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교회와 기독교인은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고 이 시대와 이 세계를 원래 모습 그대로 돌려놓는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먼저 나를 내려놓고 온전히 예수의 삶으로 바뀔 때 비로서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당당히 나아갈 수 있다. 이 길을 가는 데 더 이상 주저할 이유는 없다.

예수사랑교회가 11~13일 추석 연휴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인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나눈 것도 “복음이 율법을 이긴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따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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