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척·기도하는 척···“‘~척병’ 벗고 진정으로 거듭나야”
[아시아엔=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거듭남’의 헬라어는 ‘게나오 아노센’이다. 위로부터 즉 하나님으로부터 낳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거듭남에는 ‘처음부터’ ‘다시’ ‘철저히’ ‘근본적으로’ ‘위로부터’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산헤드린공의회 회원이던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의미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 했다.
그런 그가 예수님에게 “너는 다시 태어나리라”는 말을 들었다. 고지식한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리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예수에게 자궁 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한지 물었다. 예수는 “육신이 아니라 영혼이 재탄생하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예수와 니고데모의 대화 중에는 성경에서 매우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니고데모처럼 영적 세계에 눈을 뜨지 못하면 지위·학력·권력·종교적 열심에 상관없이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인생의 근본 문제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재탄생, 재창조의 역사는 위로부터 오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의 근본을 철저히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처럼 짧은 인생에서 사람들은 원죄적 고독을 운명처럼 짊어지고 있다.
진리가 그 속에 있는 척 흉내 내는 종교로는 자신의 운명, 흔히 말하는 사주팔자를 바꿀 수 없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영접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바꿀 때라야 가능하다.
삶의 본질이 바뀌는 거듭남의 비밀은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안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진리를 흉내내지 말라고 했다.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믿는 척, 응답받는 척, 기도하는 척···. ‘척 척’ 해선 안된다. 창세기 3장 15절이 말한 바 본능적 삶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의 진리에 이를 수 있다.
열매 없는 가을나무, 비 없는 구름은 우리가 진리를 모르고 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현상이자, 결과다.
노아는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고 조롱해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알고 방주를 지었다. 노아의 방주에는 키와 돛대가 없었다. 그러나 물 위를 떠다니며 120일을 버텼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떠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설프게 내 생각으로 살려고 발버둥쳐봐야 늘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성공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거듭나라고 주신 것이다. 거듭남 없는 성공은 사탄이 주는 상실에 다름 아니다. 거듭나지 않고 이룬 성공은 그보다 더 큰 상실과 아픔과 슬픔을 가져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