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19] ‘충신’ 굴원의 슬픔과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 ‘어부사’

굴원 <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굴원이 걸어간 길은 충신의 길이었다.

어리석은 군주의 탐욕과 비뚤어진 정치로 나라를 망칠 때, 충신은 온몸으로 이를 막지만 군주는 끝없이 의심하고 다른 길로 가고야 만다. 초나라 회왕도 그랬다.

당시의 초나라는 아직 그래도 희망이 있는 강국이었다. 진나라 대부 유세가 장의의 연횡책으로 강국 초나라는 점차 약소국이 되어갔다. ‘강태공의 나라’ 제나라 같은 올곧은 강국과 합종한 제초연합으로 중원을 든든히 버티던 초나라는 어느덧 진나라와 독자적으로 연횡하여 제나라와 갈라선다. 장의의 능력이 빛을 발한 것.

수구 세력은 친진, 개혁파는 반진(反秦)의 입장을 취했다. 진보진영 반진 개혁파의 기수 굴원은 끝까지 초회왕에게 충간하지만 탐욕으로 얼룩진 친진세력의 농간에 결국 넘어지게 된다. 물론 안보와 예산절감을 이유로 전시작전권도 진에 넘어갔다. 굴원은 정적들의 농간으로 파직되어 목숨마저 위태롭게 되고, 굴원은 좌절한다.

굴원의 어부사는 이때 탄생한 시. 그의 시는 모든 중국인들의 감성과 세계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정평이 있으며, 시대를 넘어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다.

이제 충신의 슬픔을 노래한 ‘어부사’를 감상한다.

屈原旣放
굴원이 쫓겨나
游於江潭
강과 늪지에서 노닐 때
行吟澤畔
그곳을 거닐며 시를 읊었네.
顔色憔悴
얼굴은 해쓱하고 그 모습 초라했네.
形容枯槁
벌써 죽음이 다가온 모습이었네.

이때 나이 든 어부가 다가와 말을 걸자 굴원이 대답한다.

擧世皆濁我獨淸
모든 세상 흐린데 나 홀로 맑고
衆人皆醉我獨醒
모든 사람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소.
是以見放
그래서 쫓겨난 것이라오.

그 말에 어부는 넌지시 그를 비꼰다.

世人皆濁
세상 사람 모두 흐리다면
何不?其泥
어찌 그 흙탕물을 흐리게 하여
而揚其波
파도를 이루지 않으시오?
衆人皆醉
세상 사람 모두 취해 있다면
何不?其糟
어찌 그 술지게미 씹고
而?其?
그 술을 마시지 않으시오.

굴원은 대답한다.

‘사람은 누구나 관이나 옷을 걸칠 때는 먼저 먼지를 떨어내고 쓰고 입지 않소? 이 청결한 몸에 더러운 옷을 입을 바에야, 차라리 이 몸을 던져 상강(湘江)의 물고기 밥이나 되겠소.‘

그 말을 듣고 어부는 빙긋 웃고 다시 노래로 화답하며 표표히 사라진다.

滄浪之水淸兮
창랑(滄浪)의 물 맑으면
何以濯吾纓
내 갓끈 빨고
滄浪之水濁兮
창랑의 물 흐리면
何以濯吾足
내 발 씻으리.

아! 굴원이여! 그대의 분노와 슬픔은 이렇게 수 천 년 동안을 빛나는가!

이 시는 중국 역대 최고의 시로 꼽힌다.

중국 최초의 시집은 물론 공자의 ‘시경’이다. 거기에는 중원 땅의 민요가 집대성되어 있다. 그러나 작자는 전부 미상이다. 해서 중국인들은 중국 최초의 시인은 양자강 유역, 곧 초나라 땅에서 태어난 굴원을 꼽는다.

중국인들이 그를 너무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해서 그럴 것이다. 낭만과 슬픔은 시대와 장소를 넘어 언제나 백성들의 것. 굴원은 이렇게 최초로 초나라의 ‘사(辭)’라는 독특한 운문 형식을 빌려 노래했다.

‘어부사’ 중 ‘거세개탁 아독청’ ‘중인개취 아독성’과 마지막 구절인 어부의 충고, ‘창랑의 물맑으면…’ 이하는 중국의 어린이들까지 외우고 다닐 정도로 유명하며 사랑받는다. 마치 우리가 김소월 시인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흥얼거리 듯이.

One comment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