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⑮] 장의(張儀) 연횡책, 천하를 깨다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소진이 한창 6국의 공동재상으로 날릴 때, 장의는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소진이 그랬던 것처럼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굶어죽게 된 장의는 하는 수없이 자존심 다 접고 친구 덕이나 좀 보려고 소진을 찾아간다. 친구가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고도 소진 재상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아랫것을 시켜 장의를 객사에 처박아 둔다. 게다가 음식도 하인들 먹는 것으로 아무렇게나 던져준다. 장의는 설움을 삼키고 이를 갈며 길을 떠난다. 떠나는 길에 작은 주막에 들른 장의는 돈도 없으니 안주도 없이 가장 값싼 막걸리 한 사발을 주문한다. 설움에 찌든 장의의 가슴 속은 타들어 갔다.

이때 웬 신사 한 사람이 갖은 안주와 고급술을 주문해서 장의를 대접한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밤새 놀게 되고, 그는 장의의 포부를 다 들어주며 장의의 기를 살려 준다. 다음 날 떠날 때 그는 노자 돈을 엄청나게 주며 나중에 갚으라 한다. 그뿐 아니다. 진나라에 가거든 아무개를 만나서 도움을 청하라 말한다.

다급한 장의는 아무 생각 없이 진나라로 가서 그를 만난다. 그 사람은 진나라의 대부로서 바로 진의 혜문왕을 만나도록 주선까지 해준다.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간곡하게 묻는다. 그는 비로소 모든 사실을 털어 놓는다. 이 모든 은전이 바로 친구 소진의 배려였다.

소진은 장의가 복수심으로 정신 차리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구박한 것이다. 어떤 짓궂은 사가는 이를 두고 장의가 소진에게 두 번 당한 것이라 말하기도….

크게 충격 받은 장의는 한참을 침묵하며 스스로에게 맹세한다. 자신은 소진에 비해 아직 멀었으며 소진이 물러나기 전에는 그의 합종책을 건드리지 않겠노라고….

몇 년 후 소진이 갑자기 죽자, 때를 기다리던 장의는 소진이 구축한 6국 합종책을 차례차례 무너뜨리기 시작하는데, 그가 진나라를 위해 수립한 대외 책략은 역사에 빛나는 ‘연횡책’(連橫策)이었다. 이건 진나라의 복이러니!

남북 6국이 종으로 연합해 진에 맞서는 합종책에 대응해, 진은 동서 횡으로 6국과 각각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여기에 각국의 내분을 조장하는 음모술을 가미해 각개격파 하는 연횡책을 내세운 것이다. 이 연횡책은 후에 범수(범저)의 ‘원교근공’(遠交近攻)’ 책략과 연계해 진나라 외교 정책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물론 이것이 진의 천하통일에 거의 다가가는 계기가 된 것은 말할 나위없다.

그런데 장의의 이 연횡책이란 것은 사실 소진의 합종책이 있기에 가능한 책략이다. 장의는 소진이 수립한 전략을 반대로 천하 정세에 적용해 연횡책을 구상해낸 것이다.

장의의 연횡책은 사실상 소진의 합종책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장의는 친구 소진의 탁월함을 잘 알았기에, 그에 맞서기보다는 그를 연구하여 그와 반대되는 책략을 쓰기로 결심했다.

진나라는 이미 상앙의 개혁으로 국력이 엄청 증가해 전국시대의 최강대국이 되어 있었다. 혜문왕은 모략가인 장의를 등용하고, 위·제·초나라 등을 토벌했다. 이에 기원전 318년 위·한·조·연·제 5개국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진나라에 쳐들어왔으나, 혜문왕은 장의의 책략으로 이들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진은 더욱 생산력과 군사력을 높여 다른 육국을 압도하며 갔다. 또한 자신감이 더해진 혜문왕은 기원전 324년 스스로에게 왕호를 부여했다. 이는 사실 선왕들도 왕위를 가질까말까 하며 고민하던 일이다. 그것이 혜문왕 대에 이르러 과감하게 결정한 것이다. 이것만 봐도 혜문왕이 얼마나 자긍심 강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장의는 혜문왕과 밀약하여 위나라 재상이 되고는 위나라로 하여금 진을 섬기게 하려 했으나 거부하자, 진과의 싸움에서 위나라가 크게 깨지도록 만들었다.

이듬해 제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고, 마침내 진나라가 위를 공격할 목적으로 먼저 한나라를 쳐 8만명을 몰살시켰다. 기원전 316년 혜문왕은 촉을 점령하고, 이 땅을 개발하여 한층 더 생산력을 올려 장강의 상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 장강을 이용하여 진격할 수 있게 되어 강대국 초를 압박하게 되고 초와의 싸움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섰다.

혜문왕은 장의를 등용하고, 초를 끌어 들여 박살내고, 급기야 초의 회왕을 사로잡는다. 오죽하면 사가들이 혜문왕을 말할 때, 그는 위와 한의 왕들을 마부로 삼을 정도였다고 하였다.

초나라 왕을 사로잡은 장의는 그 옛날 초의 재상집에서 당한 수모를 깨끗하게 갚았다. 진왕은 초왕으로 하여금 장의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싹싹 빌고 용서를 구하게 했고, 장의는 갖은 구박 끝에 초왕을 용서했다. 인간사 그런 것이다.

장의는 강대국 초나라로 달려가 초를 망국의 위기에 몰아넣고, 다시 한나라로 가서 왕을 협박하여 진을 섬기도록 했다. 진나라로 돌아간 그는 혜문왕으로부터 무신군(武信君)이라는 칭호를 받고는 다시 제나라로 갔다.

천하의 강대국 제나라 또한 장의의 유세에 진을 섬기게 되었으며, 조나라로 간 장의는 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는 연나라까지 설득하여, 진나라의 연횡책을 완성시켰다. 그렇다면 장의가 소진보다 정치적으로 한 수 위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는 스승 귀곡선생에게 배운 바를 철저하게 활용하였다. 음모술과 스파이를 활용한 전쟁 운용이 절묘하였다. 장의가 능소능대하며 임기응변이 능한 정치인적 기질이 풍부한 반면, 소진은 순진하달까 범생 기질이 많았다.

이렇게 귀곡자의 제자들인 소진과 장의는 세치 혀 하나로 천하를 평정했다. 후에 맹자는 감탄하여 말하길, 그들이 한 번 웃으면 천하가 흥하고, 한 번 성을 내면 모든 제후들이 두려워한다고 했다. 그 맹자는 좀 뒤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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