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⑭] 설상재(舌尙在) 원조 ‘장의’ 등장
“이 혀만 붙어 있으면 되지. 다른 건 필요 없소”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소진은 친지들의 자신에 대한 태도 변화를 씁쓸하게 바라보다가, 형수에게 묻는다.
“형수님께서는 전에는 저에게 막 대하시더니 지금은 왜 공손하게 대하십니까?”
하니, 형수는 “지금 도련님의 지위가 높고 재물이 엄청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소진은 ‘나는 똑같은 사람인데 부귀해지자 친척들이 나를 경외하니,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생각했다.
소진이 6국 공동재상이 된 후, 자신의 휘장부터 의자, 도장까지 모두 이를 상징하는 육각으로 제작했다. 나중에 그의 무덤의 비석도 미리 육각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6국의 공동재상이라는 것이 전례도 없고, 모두가 처음 보는 일인지라 일을 하기에도, 당사자가 처신하기에도, 그를 각국에서 대하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오직 진나라에 대항한다는 공동목표 하나로 합종되었기에, 실제 전개되는 각국 상황은 미묘하게 다르고, 잘못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일이었다. 또한 일개서생 소진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6국의 공동재상 노릇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아니꼬워 죽는다. 트집 잡을 게 없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구한다.
“소진은 하는 일도 없이 여러 나라에 이름을 팔고 다닌다”고 비판했다. 사실 그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공동재상을 지냈다고는 하나, 딱히 어느 나라의 재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동시에
한 나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나라를 속이는 짓도 했다. 해서 6국의 합종책은 진나라를 묶어두는 역할도 하는 등 나름의 큰 성과도 있었지만 소진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소진은 이런저런 사유로 6국의 동맹이 깨지며, 공동재상의 역할도 끝나게 된다. 6국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소진은 처음 관직을 얻었던 연나라로 돌아가 다시 재상을 지내게 된다. 연나라의 왕은 소진에게 밀명을 내리길, “제나라로 가서 벼슬을 지내며 제나라의 국력을 떨어뜨리라”고 지시했다.
그 방식은 제나라에 커다란 토목공사를 일으켜서 재정을 고갈시켜 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사실 이건 소진 보고 가서 죽으라는 명령과 진배 없었다. 소진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는 것 자체가 소진답지 않은 일이었다. 거절하고 낙향했어야 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런 한심한 명을 받았을까? 지분 없고 힘없는 의전총리의 속성이자 한계일 것이다.
제나라에서 말재주를 부려서 제나라 왕에게 신임을 얻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소진은 제나라에서 큰 벼슬과 상을 받았다. 그러나 거짓은 꼭 심판받는 법. 소진을 시기하고 불쾌해하던 제나라의 한 대부가 자객을 보내 그를 벤다. 결국 소진은 그 부상으로 인해 얼마 가지 못하고 죽게 된다.
소진은 그냥 죽지 않았다. 옛날 오기(吳起)가 마지막 순간에 적들에게 쫓기자 선왕의 무덤 위에 엎드리자 적들이 쏜 화살이 오기와 무덤 위에 쏟아졌다. 선왕 무덤에 감히 화살을 쏘았다 하여 적들 모두 사형에 처해져서 오기와 같이 죽게 된 것을 떠올렸다.
소진은 죽어가던 중에 제나라 왕에게 유언으로 자신이 죽거든 반역죄를 씌워서 자신의 시체를 거열형에 처해 거리에 내놓으면 자객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유능한 대부인 소진을 갑자기 잃게 된 제나라 왕이 이를 그대로 따르자 곧 자객이 왕에게 상을 받기 위해 스스로 반역자 소진을 죽였다고 나섰다가 즉각 잡혔다. 결국 암살사건의 배후에 있던 대부까지 붙잡혔다. 제 왕은 붙잡힌 자객과 대부를 모두 죽여 버린 후에 죽어가면서도 꾀를 내어 원수를 잡은 소진의 지혜를 칭찬하였다.
사마천은 ‘소진열전’에서 소진의 유세능력을 칭찬했다. 사실 6개의 나라를 홀로 동맹 맺게 하고 6국의 공동재상 노릇한다는 것이 보통일은 아니다.
한편 장의는 소진의 출세에 자극 받은 바 큰지라, 더 열심히 천하를 유세하며 다녔다. 아니, 유랑걸식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러다가 후에 초나라 왕위에 오르게 되는 초 공자의 식객으로 앉아 있게 되었다.
어느 날 그 공자의 아들 결혼식 잔치 날, 자랑하던 귀한 벽옥이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 모두가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인데, 장의만이 초라한 식객이었다.
모든 빈객들이 뜨악하게 장의를 쳐다본다. 천하의 장의도 그럴 때 당황할 수밖에….인간들이 재상을 바라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천박함의 경연장이 되어간다.
“장의는 빈한하여 품행이 좋지 않습니다.”
“벽옥을 훔친 자가 그일 것입니다.”
“아니, 저놈이 훔치는 것을 봤습니다!”
기가 막힌다. 이럴 때 군자는 침묵하는 법. 분노와 수치심으로 침묵하는 장의의 얼굴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인간들이 모두 장의에게 달려들어 린치를 가한다. 어처구니없게 많이 맞았다. 아, 장의여! 그는 거의 죽을 정도로 맞고서 쫓겨 난다. 물론 벽옥은 다른데서 나왔다. 집으로 기어서 돌아 온 그에게 아내가 눈물로 말한다.
“아! 당신이 책을 읽고 유세를 하지만 않았던들 어찌 이런 지독한 욕을 당했겠소?”
그런 중에도 장의가 개그 한 마디 친다.
“마누라! 내 혀가 붙어 있는지 봐주오.”
“혀는 아직 붙어 있구려.”
“그럼 됐소. 이 혀만 붙어 있으면 되지. 다른 건 필요 없소! 하하하”
이 일화는 유명하여 “혀는 아직 붙어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 ‘설상재’(舌尙在)’가 탄생했다. 유세가 장의의 씁쓸한 모습이다. 작가의 마음도 너무 아프다.
장의는 표표히 초나라를 떠나, 드디어 진나라로 들어간다. 이제 소진의 합종책과 장의의 연횡책이 불을 뿜는 천하쟁패의 대결을 하게 된다. 후일에 장의는 초나라 왕이 된 공자에게 오늘의 빚을 처절하게 갚아준다. 인생사 그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