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17] 손무의 150년 후손, 손빈 “복수는 나의 힘”

손빈(孫?) <사진=바이두>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손자의 또 다른 인물, 손무의 150년 쯤 후손인 손빈. 그는 조부 손무와는 달리?실존적 인물이다. 그를 말하려면 먼저 한숨부터 나온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너무도 허망한 것을 일깨워준다.

제나라 사람 손빈은 기원전 356년에서 기원전 319년 무렵에 활동했다. 그 역시 청운의 뜻을 품고 춘추전국시대의 피바람 속에서 병법으로 우뚝서고자 했다.

청년 시절 손빈은 친구 방연과 함께 신비의 인물 귀곡선생의 수제자들이다. 고조할아버지 손무의 후손답게 그는 탁월했다. 언제나 경쟁자 방연을 앞질렀다.

이때는 이미 전국시대에 접어들어, 당시 전국 7웅 중에서 진 나라 다음으로 막강한 제나라와 위나라는 중원의 패권을 놓고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경쟁자 방연은 출세를 위해 위(魏)나라에 가서 각고의 노력 끝에 위혜왕(惠王)에 의해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방연의 머리 속에는 항상 트라우마처럼 손빈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연은 자신이 손빈만 못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열등감은 위기감으로 변하고, 그 위기감은 손빈에 대한 살의로 변했다.

그는 철저하게 준비한 후에 손빈을 위나라로 초청했다. 국경에서 곧바로 손빈을 간첩죄로 체포하도록 시키고는, 손빈을 죽이지는 않고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빈형(?刑)을 가해서 앉은뱅이로 만들었다. 손빈의 빈자가 여기서 나왔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여기에 손빈의 얼굴에다 죄인임을 나타내는 경형(?刑)까지 남겼다. 방연은 끝까지 모른 척 대궐에 남아 있다가 손빈이 가지고 있는 손무의 비책 손자병법을 챙기기 위해 은혜를 베푸는 척 갑자기 나타나 그를 구해주며 회유한다.

한참 후에 방연의 흉계를 알아낸 손빈은 어떡하던 살아남고자 했다. 이제 목표는 출세가 아니라 복수가 되었다. 하지만 치밀한 방연은 손빈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이에 대한 손무의 방책은 미친 짓 하기였다. 거리에 맨몸으로 나가 춤을 추고, 개똥을 먹었으며, 똥오줌을 가리지 않았고, 혼자서 횡설수설하였다. 방연은 그래도 감시했고, 7년 정도가 지나자 비로소 감시를 풀었다.

이때 당도한 위나라의 라이벌 제나라 사신은 손빈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즉시 알아보고, 천신만고 끝에 손빈을 숨겨 제나라로 도주했다.

손빈은 그곳에서 제나라 대장군 ‘전기’의 빈객으로 있게 된다. 당시 제나라 귀족사이에서는 경마 노름이 크게 유행했는데, 손빈은 경마에 참여하는 말들이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고, 시합은 삼판양승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는, 전기에게 승리비책을 헌납했다.

대장군 전기는 아파트 값 100채에 해당하는 천금을 걸고 제왕을 비롯한 공자들과 붙었다. 그 비책은 먼저 제일 못한 하등 말을 상대의 상등 말과 붙여서 한 판을 져주고, 다음 상등 말을 상대의 중등 말과 붙여 한 판을 만회한 다음 상대의 하등 말과 내 중등 말을 붙이면 필승이라는 것이었다.

전기는 이 방법으로 당연히 시합에서 이겼다. 사람들은 당시 손빈이 사용한 이 방법을 ‘삼사법’이라 불렀다. 전기는 바로 제왕에게 손빈을 천거하고, 손빈은 왕의 군사가 되었다.

이제 때는 왔다. 막강한 위의 사령관 방연과 제의 군사 손빈이 건곤일척의 한판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기원전 353년에 벌어진 제나라와 위나라의 ‘계릉(桂陵)전투’는 중원 쟁탈전의 관건이 되는 한판 승부였다.

방연은 8만 대군을 이끌고 조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한단을 포위했다. 위기에 몰린 조나라 왕은 제나라로 사람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손빈은 신속하게 위나라의 수도인 대량으로 진격하여 교통의 요충지를 점거했다.

위나라 군대는 예상대로 반격에 나섰고, 제나라 군대는 즉시 후퇴하면서 겁을 먹은 듯 연출했다. 그러고는 위의 수도 대량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방연을 자극했다. 방연의 회군을 유도하자는 전략이었다. 주력군은 위나라 군대가 지나게 될 계릉(지금의 산동성)에다 매복시켜놓게 했다.

과연, 방연은 손빈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들었다. 방연은 바로 군대를 철수시켜 밤낮으로 자신들의 수도인 대량을 향해 진군했다. 그리고 마침내 계릉에 이르렀다. 그 순간 제나라의 매복병들이 벼락같이 기습을 가했고, 위나라 군대는 당황한 끝에 참패를 당했다.

탐욕스런 위혜왕은 이번에는 한나라를 공격하고, 제나라 군대는 한나라를 구하기 위해 위의 대량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혜왕은 태자 신(申)을 상장군, 방연을 사령관에 임명하여 제나라 군대를 공격하도록 했다. 손빈의 군대는 순진한 태자 신과 교만하고 승리에만 급급한 방연의 약점을 이용했다.

제나라 군대는 위나라 군대와 맞닥뜨리자 바로 머리를 돌려 후퇴했다. 첫날 10만 병사의 밥을 짓는 솥을 둘째 날에는 반으로 줄였다. 셋째 날에는 3만명 분으로 줄였다. 제나라 군대의 밥솥이 계속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 방연은

“겁 많은 제나라 놈들, 전투한 지 단 사흘 만에 절반 이상의 병사들이 도망쳤구나!”라며 의기양양해서 제나라 군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밥솥줄이기 작전 ‘감조유적’(減?誘敵, 솥을 줄여 적을 속이다)이다.

손빈은 위나라 군대가 그날 밤이면 마릉(馬陵)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이곳을 선택하여 궁사 1만을 도로 양옆에 매복시킨 다음, 위나라 군대가 도착하여 횃불이 타오르면 일제히 불빛이 있는 쪽으로 화살을 날리도록 명령을 내려두었다. 또 길옆에 서 있는 가장 큰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는 드러난 허연 부분에다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라고 써놓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예상대로 방연이 마릉에 이르렀다. 방연은 큰나무에 새겨진 글자를 발견하고는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횃불을 밝히도록 명령을 내렸다. 횃불이 타오르는 순간, 방연이 글자를 채 확인하기 전에 화살이 비오듯 날아들었다.

대세가 기울었음을 직감한 방연은 “지혜가 다 떨어지면 군대는 패하게 마련”이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방연이 죽기에 앞서 그다운 멋진 말을 한다.

“결국 내가 또 손빈 이 자식의 명성을 높여주는구나!”

승기를 잡은 제나라는 일제히 진격하여 위나라 군대를 섬멸시키고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았다. 이후 위나라는 점차 망해갔고, 제나라는 진나라와 함께 천하를 쟁패하는 양강으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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