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24] 장평대전 그후···범저 간계로 자결한 백기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대장군 백기는 이렇게 장평대전을 승리했고, 진나라의 전설이 되어갔다.
그가 그동안 점령한 적의 성이 70여개나 되었다. 그러나 인생사 언제나 그러하듯이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그가 전설이 되고 있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서는 그를 뒤에서 가차 없이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연 백기의 공적이 커지는 만큼 그를 시기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특히 재상 범저가 누군가! 백기가 잘나가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겠나! 범저는 잽싸게 움직여서 백기가 더 이상 공적을 세우지 못하도록, 조나라의 땅 일부를 할양받는 조건으로 군대를 철수 시킬 것을 소양왕께 간하여 관철시켰다.
한편 진나라 군의 잔학한 집단학살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은 물론 다른 5개국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가장 컸고, 강국 조나라를 멸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조나라에는 이제 일할 장정조차 거의 없었으며, 도대체 나라를 운영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토록 강대했던 조나라는 결국 진나라 공격의 호흡조절로 근근히 수명을 연장하긴 했지만 약 30년 후인 기원전 225년에 멸망한다. 그 후로 거칠 것 없는 진나라는 다른 5국을 차근차근 먹어간다. 그 이야긴 천천히 계속된다.
다시 이야기를 되돌아가 보면, 소양왕은 거침없이 조나라를 완전히 집어먹으려 했다. 점차 세력이 커지고 왠지 불안한 기미를 보이는 노장 백기를 내치고 젊은 장수 왕릉을 대장군으로 삼아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여러 차례 공격하였다. 그러나 조나라는 아직 만만치 않았다. 소양왕은 더욱 열 받아 공격했고, 계속 실패했다. 1년여를 공격했지만 매번 허사로 끝났다. 소양왕은 하는 수 없이 재상 범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쳤던 백기를 불러 대장군을 맡기고 다시 공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백기 장군 또한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남아 있었다. 왕과 재상 범저를 속으로 원망하던 차였다. 그는 대장군을 맡지 못하겠다며 말한다. 그 이유를 진나라 역시 지난 장평대전에서 크게 피해를 입었으며, 조나라를 공격하는 틈을 타 다른 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하면 위험해 처할 수도 있다 했다. 쉽게 말해 왕명에 대한 불복종이었다. 이는 소양왕과 재상 범저를 동시에 공격하는 언행이기도 했다.
범저는 일언지하에 대장군 백기의 진언을 내치며 “일개 장수가 감히 정치를 논하느냐, 그건 네가 걱정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백기를 모욕했다. 더욱 화가 난 소양왕은 백기를 일개 쫄병으로 강등시키고, 동시에 음밀이라는 벽지로 유배시켰다. 하지만 백기 또한 이에 굴하지 않고 오랫동안 병을 핑계로 왕의 명령을 계속 거부했다. 다른 장수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백기는 자신을 믿었다. 자부심 강한 백기는 감히 니들이 나를 어쩌겠느냐는 배짱이 있었다.
“이 진나라에서 나를 건드릴 자 그 누구냐? 나는 진나라의 대장군이다!”
그러나 백기는 재상 범저를 잘 못 봐도 한 참을 잘 못 봤다. 그는 죽을 고비와 갖은 고생을 다 겪은 사람이다. 오기로 말하면 누구 못지않은 인사다. 말한바 있지만, 그는 눈치 한 번 준 것도 잊지 않는 사람이다. 작은 은혜는 크게 갚고 작은 원한도 수백 배 갚아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나라와의 전쟁도 계속 답보상태로 있으니 소양왕은 다시 백기 장군에게 두우라는 땅으로 이주할 것을 명령하였다. 속으로는 이제 그만 백기가 백기 들고 엎드리기를 바라면서….
이때 범저가 나선다. 그는 이번 기회에 골치 아픈 백기를 아주 제거해버리기로 결심했다.
‘네가 감히 나한테 기어올라?’
그가 소양왕에게 간언한다. 백기가 전공 좀 세웠다고 기세등등하여 조정을 아주 우습게 여기고 왕까지 능멸하고 있다 하였다. 이를 그대로 두면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되며 지존의 위상에 금이 가게 될 것이라 하였다. 자존심 강하고 성질 급한 진 소양왕은 즉시 백기에게 칼을 보내 스스로 자결할 것을 명한다. 그나마 네가 전공을 세웠으니 명예를 지켜주는 거라고 했다.
자결을 명받은 백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잘못이 없었다. 군인으로서 평생 몸 바쳐 싸운 결과가 이렇듯 허망하고 억울한가! 자신은 평생에 걸쳐 진나라를 위해 싸웠고, 단 한 번도 패전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최대의 전쟁인 장평대전에서 승리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진나라의 만고공신으로 남아야할 인물이지 자결할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는가?
무관들의 문제점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을 돌아볼 줄을 모른다. 앞으로 나가는 것에만 능하다. 조나라 염파 장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는 훌륭한 재상 인상여를 친구로 둬서 충고를 잘 들었고 그가 하자는 대로 하여 말년이 좋았다. 조왕이 염파를 내치고 역량이 모자란 조괄을 대장군으로 바꿨을 때, 그 성질대로 했으면 염파 역시 처참하게 죽을 목숨이었다.
백기는 몇 날 며칠을 생각한 끝에 드디어 그는 자신이 죽어야 할 이유를 찾아냈다.
‘아, 나는 조나라의 젊은이들 40만 명을 참혹하게 생매장한 나쁜 놈이 아니던가? 나는 죽어 마땅하다. 내가 이긴 가장 큰 전투가 바로 나의 죽음의 이유가 되었구나!’
대장군 백기는 이겨서 죽었다. 이 때가 진나라 소양왕 50년 11월 추운 겨울날이었다. 아! 무한경쟁시대의 인간들이 이랬다.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전국시대의 비정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이렇게 이겨서도 패해서도 죽었다.
몇 십 년 후 초패왕 항우군은 신안(新安)에서 진나라 명장 장한이 거느리는 20만 대군과 크게 한 판 붙는데, 진나라군의 그 막강한 대군이 항우군의 불시 습격을 받게 되어 대패하고 만다. 장한 장군은 항우에게 투항하여 살아남지만, 그의 20만 장졸은 초나라 군과 보급문제로 갈등하다가 그들의 반란을 걱정한 항우에게 장평대전 때와 같은 이유로 생매장 당한다.
과거 수십만을 생매장한 이유로 백기가 죽었듯이 항우도 그 잔인성이 천하에 알려지게 되고, 이것이 유방과 비교되며 천하쟁패의 경쟁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된다. 민초들은 이런 일에 엄청 민감한 법이다. 반면 유방은 장자방과 소하의 진언대로 진나라 3대 황제 자영의 투항을 받아주고,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는 법률을 반포하여 민심을 얻게 된다.
역사는 이렇게 끝없이 반복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