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27] ‘거상 또는 장사꾼’ 여불위가 낚은 대어 영이인

여불위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여불위는 순수한 거상이 아니고, 장사꾼이라는 표현이 그의 행적에 부합합니다. 거상이라 고치면 안됩니다. 큰 장사꾼이 맞습니다!”

전국시대의 강대국 사이에서 종주국 주 황실은 언제나 이리저리 눈치 보며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 황실은 세상 돌아가는 상황파악 능력까지 무뎌지고 있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주나라는 제후들의 합종책에 가담하여 진을 적으로 두게 된다.

진 소양왕은 그동안 억지로라도 섬기는 척하던 주 황실의 배반에 진노했다. 이에 기급한 주 난왕은 36개 읍과 주민 3만명을 바치고 용서를 빌었다. 진 소양왕은 난왕을 죽이지는 않고 목숨만은 살려서 돌려보냈다. 이에 난왕은 충격으로 죽게 되고, 서주의 백성들은 보따리 챙겨서 동주로 달아났다. 그 후 기원전 249년 장양왕은 동주를 멸망시킨다.

영원히 살 것 같았던 천하의 소양왕. 50년여 재위 동안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 소양왕은 얼마 후 사망하고, 아들 효문왕 영주가 즉위했다. 이에 조나라에 인질로 있던 영이인(자초)은 처자와 여불위를 데리고 진나라로 돌아와 태자에 책봉되었다. 효문왕은 즉위한 지 1년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고, 태자 영자초가 왕으로 즉위하니 그가 진시황 정의 부친인 제30대 진왕 장양왕이다.

장양왕 영자초는 참으로 사연이 기구한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히려 주인공은 그가 아니라 천하의 장사꾼 여불위다. 이제부터 그들의 칡뿌리처럼 얽힌 이야기들을 말할 때가 왔다. 여불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이전까지 전국시대의 정치인이나 장수들 이야기를 주로 다뤘지만 이제 장사꾼 이야기를 할까 한다.

전국시대의 치열한 전란 속에서 각국은 나름대로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것은 서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방책을 상호조약으로 맺어두는 것이다. 이는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모두 관행처럼 지켜야만 했다. 그것은 각국왕실의 공자 한 사람을 상대국에 인질로 보내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인물이 인질이 될 수는 없기에 왕의 정실 말고 첩실의 아들 중에서 서열이 한참 뒤에 보이지도 않는 왕자, 유사시 잡혀 죽어도 그만인 별 볼 일 없는 공자가 인질로 가게 된다.

당시 조나라에 진의 인질로 와있는 영이인(자초)이 진나라 왕실의 그러한 사람이었다. 부친은 안국군(安國君)으로 소양왕의 둘째 아들이다. 그가 나중에 소양왕을 잇는 효문왕이 된다. 안국군에게는 아들이 20여명 있는데, 정실의 소생은 없고 모두 서출로, 영이인은 그 중간쯤에 위치하였다. 그러니 서출 간에 경쟁이 좀 치열하겠나.

영이인은 서열도 아득한데다 그의 생모 하희(夏嬉)는 남편 안국군이 그리 총애하는 여인이 아니었다. 그러니 하희는 이인을 낳고도 궁중의 독수공방 외로운 여인이 되었다. 당연 이인도 모친과 같은 팔자로 아무도 눈여겨보는 이 없었다. 그는 좀 자라자 바로 적국 조나라로 보내졌고, 그가 인질로 있거나 말거나 진은 조나라를 심심하면 침공했고 영토를 짓밟았다.

조나라는 너무 열 받아 이 인질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진나라 눈치도 보이고, 별것도 아닌 이인을 죽였다고 진나라가 뭐 놀랠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내버려뒀다. 이인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적국 조나라에서 그야말로 굶어 죽기 직전의 궁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사람이 여불위다. 여불위는 하남의 위(衛) 복양의 상인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를 돌며 장사를 해서 부를 쌓았다. 그는 거부인 아버지와 함께 중국 천하를 누비며 크게 장사하는 장사꾼이었지만 장사꾼답지 않은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입신양명하는 것이었다. 벼슬아치가 아니었음에도 자신이 크게 출세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장사길에 나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우연히 조나라에 인질로 와있는 진의 공자 영이인을 만난 것이다. 그는 이인을 만나자마자 첫눈에 ‘이 물건 가지고 장사하면 엄청 남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훗날 기화가거(奇貨可居)라는 고사의 유래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여불위는 이 일을 자신의 부친과 상의했고, 여씨 부자는 이인에게 투자하기로 결정하고는 다시 조로 돌아와 공자 이인을 찾아갔다.

전국시대의 억만장자로서 그는 지금 돈의 투자처를 발견한 것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대상을 찾은 것이다. 장사꾼 집안의 자식으로서 입신양명을 해보겠다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여불위는 많은 돈을 투자하여 이인이 사는 집도 좋은 곳으로 옮기고, 이인이 활발하게 조나라의 사교계에 진출토록 하였다. 그가 마치 조국 진나라 조정에서 차차기 대권주자로 인정받은 것처럼 당당하게 행동하게 했다. 어제의 영이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잘 대접했고, 찾아가서 선물하였다. 조 왕실에도 들어가서 조왕 부부를 연회에 초대하고 고관대작들도 함께 초청하여 최고로 대접하였다. 자연히 그를 대하는 조나라 조정의 태도도 크게 달라졌다. 그들은 이인이 진 소양왕으로부터 미래를 약속받은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당연히 이인을 찾는 손님들로 북적거리게 되었다. 심지어 그 중에는 당대의 학자인 순자(荀子)나 공손룡(公蓀龍)같은 거물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인은 그들을 융숭하게 대접했으며 태도 또한 은근하여 “과연 왕재!”라는 칭찬이 돌게 되었다. 이 모두가 여불위의 ‘킹메이킹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영이인이 이렇게 1년여 조나라 한단성에서 제대로 자리 잡는 것을 보고 여불위는 다시 진나라 수도인 함양(咸陽)으로 큰 장사를 위해 먼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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