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23] 조군 40만 생매장 ‘장평대전’ 세계 전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조괄이 장수가 되니, 그 어머니가 눈물 지으며 조왕 앞에 나서며 “우리 아들은 장수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 왕이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 아비 조사 장군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헌신하여, 그를 좋아하는 진정한 친구가 수백 명이나 되었고, 재산에도 관심이 없어서 조정에서 내리는 상은 모두 부하들에게 나눠주었고, 공과 사도 분명히 하여 전쟁에 소집되면 일절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반면에 우리 아들 괄은 장군이 되자 조회를 받는데, 그 위세가 하늘을 찔러 군사들이 감히 그를 올려다보지 못하며, 왕께서 내리신 돈과 옷감은 집에다 쌓아 놓고, 날마다 좋은 땅과 집이 없는지 알아보고는 그것들을 사들입니다. 아비와 아들의 마음이 이렇게 다르니 왕께서는 아들을 제발 보내지 마십시오! 만약 그가 대장군이 되면 조나라의 불쌍한 귀한 자식들이 다 죽게 됩니다.”
참으로 선견지명이 있는 대단한 어머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조왕은 대장군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며 조괄을 임명한다.
기원전 252년 7월, 조나라 장수 조괄이 장평에 도착하였다. 백전노장 백기는 조사 장군은 물론 그 아들 젊은 조괄도 잘 알고 있었다. 백기는 조사 장군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조괄의 급한 성격과 병법책에만 의존하는 전략을 역이용하기로 하였다. 도대체 이런 애송이를 대장군으로 보낸 조왕의 판단을 경멸하면서.
조괄은 도착 즉시 전임 노장군 염파의 작전을 모두 폐기하고, 참모들을 전부 새로 바꾼다. 그리고 조왕의 바람대로 본때를 보여주듯 염파가 취하던 기다림의 전략을 즉시 버리고 총공격을 감행한다. 이야말로 백기가 기다리던 것이었다. 백기는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격파하기 위해서는 정공법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먼저 본진 여기저기에 수많은 복병을 배치했다. 그리고 아군으로 하여금 대군을 보면 놀란 듯 대적하자마자 바로 후퇴하라고 명령하였다.
조괄의 40만 대군은 거두절미하고 진군 본진으로 무지막지하게 쳐들어왔다. 그곳은 그러나 이미 보루를 높게 세우고 조의 대군을 맞이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조군은 진군의 수비를 돌파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였다. 바로 그 순간, 백기는 대기하고 있던 복병으로 조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게 했다. 조괄은 전군에 전열을 가다듬고 재공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미 조의 군사들의 전열은 흩어지고 있었다.
백기의 노림수가 나왔다. 진군의 본진에 매복해있던 기병 5000기가 쏟아져 나와 조군의 허리를 휘젓는다. 조군의 대열은 와해되기 시작했고, 이때 지켜보던 진군의 경보병 부대가 드디어 조군의 본진을 타격하자 조군은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다. 진나라군의 백병전은 이미 정평이 나있었다. 그들은 엄청난 완력과 백기장군의 철저한 훈련으로 천하에 상대할 자가 없었다. 조군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조괄은 공포에 질린 병사들을 독려하여 새로 보루를 쌓기 시작했다. 튼튼한 보루를 만들었다. 아무리 진군이 조군을 초토화시켰다 하더라도 40만이나 되는 병력은 아직 버티고 있었다. 이리하여 조군은 진군에게 포위된 채 전쟁은 또 다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조군이 진군에게 포위된 지 46일이 흘렀다. 보급로가 끊긴 조나라 군사들은 배고픔에 허덕이다 급기야 동료들을 잡아먹는 처참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조괄은 여러 차례 진군을 공격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조괄은 마지막 수단으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퇴로를 뚫으려 치고 나갔다. 기다리던 진군의 저격수가 독화살로 적장 조괄을 맞춰 쓰러뜨리니, 그는 전사하고 말았다.
조군은 진군에 항복했고 전투는 종결되었다. 소양왕은 직접 장평 근처까지 와서 모든 병사들을 1계급씩 특진시키고, 군사들을 독려하였다. 진의 소양왕은 이 기회에 조나라를 초토화시키려 들었다. 변법으로 정교한 법체계와 행정체계를 갖춘 진나라는 막강하였다. 게다가 조나라는 국가의 전 병력을 모두 동원한 상태였으나 진나라는 아직 넉넉하게 여유가 있었다. 결국 조나라는 진에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다.
한편 조나라 40만 군사를 어떻게 처리할 지가 큰 골칫거리였다. 이렇게 많은 포로를 먹일 군량이 진나라에는 없었다. 결국 대장군 백기는 조군이 후일에 배신할 것이라는 명분으로 모두를 일거에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즉 조군 40만을 일거에 생매장하라고 명했다. 진군은 이들을 모두 생매장해버렸다. 어린아이 240명은 살려뒀다고 한다. 실로 참혹한 살육이었다. 전국시대 당시의 정서가 이러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돌아 몇십 년 후, 초패왕 항우가 이를 그대로 본떠 진나라 20만 대군을 파묻어버리는 복수를 대신한다.
장평대전은 엄청난 전쟁이었다. 세계 전사상 가장 참혹한 것이었다. 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의 발굴에서도 밝혀졌다. 어마어마한 집단유골이 최근 발견되어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