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20] 진 소양왕,범저의 ‘원교근공책’ 얻다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기원전 311년, 강력했던 제26대 진의 혜문왕이 죽고, 그 아들 무왕이 제27대 왕으로 즉위하자, 장의는 갑자기 힘을 잃는다. 무왕은 장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 혜문왕과 죽이 맞아서 갖은 음모를 꾸며대는 것도 그렇고, 근본 없는 장의가 진나라의 대부로 전횡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니 만고의 진리인 세태변화대로 진나라 조정 대신들은 어제까지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장의를 공공연히 비방하고, 모함하기 시작하였다. 국내뿐이 아니었다. 국외에서도 장의가 진의 새로운 왕에게 물 먹고 있다는 소문이 나자, 각국은 진과 맺었던 연횡을 슬슬 버리기 시작했다. 장의는 더 이상 지체하다간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느끼고 야반도주하여 위나라로 떠나갔고, 거기에서 1년 동안 재상으로 있다가 죽었다. 과연 세태의 변화는 진리였다.

그런데 제27대 무왕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전혀 다른 의미로 특별했다. 무왕 재위 5년째 되는 해에 우승상 감무를 시켜 낙양을 정벌했다. 그토록 탐내던 주나라 왕실 보물인 거대한 솥 구정(九鼎)을 보고는 장사 맹열에게 그걸 들어보게 하고는 맹열이 구정을 들어올리자, 자기도 한번 들어보겠다고 객기를 부리고는, 그 무거운 구정을 들다가 깔려 죽었다.

제28대 진 소양왕 또는 소왕(재위 기원전 306~251년)이 천신만고 끝에 조나라의 지원으로 전격적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아득한 할아버지 목공만큼 명민했으며 우선 장수했고, 그만큼 일도 많이 하여 진나라 천하통일의 대들보를 놓은 왕이었다. 소양왕은 자신감으로 넘쳐있어서, 이제 유세객들이라면 모사꾼이라며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이제 진나라에 모사꾼은 필요 없다 선언했다. 그래서 유세객들이 인사드리러 오면 무조건 내쳤다.

범저(范雎)

이 때 책사 범저(혹은 범수)가 등장하고 중원은 다시 한 번 들끓기 시작한다. 인재의 바다 속에서 무한경쟁시대에 인물들은 모진 고난을 겪고 살아남아 뜻을 펼쳤다. 범저 또한 그런 인물이었다.

범저는 당시의 모든 인물들처럼 당연히 가난하였다. 위나라 사람인 그 역시 왕 앞에 나서기에는 돈도 빽도 없었다. 해서 일단 위나라 중대부인 수고를 모신다. 이 수고란 사람이 그리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 의심도 많고 사람 볼 줄도 몰랐다.

수고가 위나라 왕의 사자로 제나라에 갔을 때 범저가 수행원으로 따라갔다. 수고의 임무는 과거에 연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할 때 위나라도 슬쩍 다리 하나를 걸쳤던 사실이 탄로 나서, 일이 커지기 전에 이를 사죄하러 간 것이다. 제나라 양왕(襄王)이 이들 일행이 인사하자마자 “위나라 졸개들이 여길 왜 왔냐? 그때는 연나라 편에 붙어서 까불더니 무슨 염치로 왔냐?”고 하였다.

수고는 제왕의 힐난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땀만 뻘뻘 흘리고 있는데, 이때 범저가 당차게 나선다. “그거야 당시는 제나라가 막강했으니까 연나라와 힘을 합쳐서 나간 거고 지금은 제나라의 새 왕께서 훌륭하다고 해서 그 분을 도와 천하를 논하려고 왔는데, 뭘 과거 일을 새삼 언급하십니까?”

제나라 왕이 범저를 힐끗 보고는 그 당당함이 마음에 들어 상을 내리는데, 금 열 근과 쇠고기와 술을 보낸다. 범저는 물론 이를 거절했지만, 수고는 귀국하여 스스로 바보짓한 죄도 덮을 겸하여 “저놈이 필시 제나라의 스파이일 것”이라고 모함한다.

죄책감과 시기심은 모두를 망치게 되는 법. 위나라 재상은 수고의 보고만 듣고는 매우 화를 내며 범저를 매질한다. 큰 공을 세우고도 졸지에 제나라 스파이가 되어버린 범저는 갈비뼈가 모두 부러지고 이가 다 빠질 정도로 맞는다. 범저가 매를 견디다 못해 죽은 척하자, 그를 거적더미로 둘둘 말아 화장실에 버린다. 빈객들은 술에 취해 오며가며 그의 몸에 오줌을 누워 그를 모욕했다. 위나라 하는 짓이 이러했다. 그러니 위나라의 인재란 인재들은 전부 외국으로 나갔던 것이다.

범저는 하인에게 살려 달라 부탁하며 자신을 여기서 나가게만 해준다면 후에 꼭 사례하겠다며 겨우 사지에서 빠져나온다. 결국 정안평이란 사람의 도움으로 범저는 장록으로 이름을 바꿔서 죽지 못해 숨어 산다.

모진 세월을 견뎌낸 범저에게도 기회가 왔다. 진나라 사신으로 위에 온 왕계에게 정안평이 은밀하게 범저를 추천하여, 범저는 위나라를 벗어나 진나라로 들어간다.

후에 범저는 자신을 살려준 하인, 정안평, 왕계 등 은인들에게 큰집과 많은 전답, 큰 성의 태수, 대장군 자리 등 각자에게 천 곱절 만 곱절로 갚는다. 범저는 진나라에 두 가지 현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는 진의 소양왕이 제나라를 치고자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왕실의 외척세력이 발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범저는 진나라 소양왕에게 글을 올린다. 범저는 먼저 “진나라에 무슨 왕이 있나요, 단지 태후와 양후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일갈한 후, “신은 듣기를 ‘일개 대부에게 필요한 인재는 나라 안에서 찾고, 나라를 일으킬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현명한 군주는 천하에서 인재를 빼앗아오는 법입니다”라고 했다.

진 소양왕은 매우 기뻐하여 수레를 보내 범저를 불러와 천하의 일을 의논한다. 진나라가 꿈꾸는 천하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연횡책 말고 새로운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때 범저가 제시한 외교 전략이 바로 ‘원교근공책’이다.

이는 진나라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는 사이좋게 지내고, 국경을 접한 가까운 나라는 침공한다는 새로운 외교안보 전략이다. 범저의 방책대로 소양왕은 먼저 위세 좋던 외척세력을 전부 귀양 보내고 재산을 몰수한다. 도대체 그들이 훔친 나랏돈이 진나라 재정보다 더 많았다 한다.

이게 대체 어느 나라인가? 또한 진나라는 기왕의 연횡책과 함께 이 새로운 원교근공책을 외교안보전략으로 삼아 끝내 전국시대를 끝내고 천하통일을 이룬다.

문제는 중국이 이 원교근공책을 현대에 이르기까지 고수하여 주변국들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점이다. 원교로는 미국, 유럽, 필리핀 등이고, 근공으로는 우리 한반도와 일본 티벳 등 주변국이다. 중국은 군사적·경제적으로 이 책략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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