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26] 대장군 염파·이목의 조나라, 간신 곽개 손에 놀아나 패망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우리가 잘 아는 천자문 끝자락에는 ‘기전파목 용군최정’(起?頗牧 用軍最精)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 부분은 전국시대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해석이 불가능한 부분이다. 풀이하자면 ‘기전파목’은 전국시대의 천하명장 진나라의 ‘백기’ ‘왕전’, 조나라의 ‘염파’ ‘이목’ 이름 뒤의 글자들을 모아놓은?것이다. 그 뜻은 “4명의 명장들이 군사를 가장 잘 운용한다”는 뜻이 된다.
천자문은 중국 5대10국 시대 남조의 양나라의 주흥사가 글을 만들고 동진의 왕희지의 필적 중에서 해당되는 글자를 모아 만든 것이다. 전국시대 4대 명장 이야기니까, 그들이 활동한 기원전 3세기로 보면 약 2200여년 전 이야기다.
진의 대장군 백기와 조나라 명장 염파의 운명은 장평대전이 한창일 때 묘하게 엇갈린다. 모든 것이 엇비슷한 두 나라의 싸움에 가장 큰 차이는 지도자의 리더십이었다. 진나라의 소양왕은 현군인 반면 조나라의 효성왕은 어리석은 혼군이였고, 그 차이가 끝내 천하통일과 망국이라는 천양지차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진의 소양왕과 재상 범저 그리고 대장군 백기는 천하대전인 장평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사실상 그들 때에 진나라 천하통일의 얼개를 거의 다 그려놓았다. 물론 기라성 같은 진의 현군들과 명재상들의 지속적인 공헌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백기는 자긍심이 넘쳐나 재상 범저까지 적으로 돌리게 되고, 결국 그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반해 조나라의 명장 염파는 장평대전이 한창일 때 중도에 실각당했으니 그 얘기를 마저 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왕전과 이목 두 장군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출연한다.
대장군 염파는 흔히 노익장의 대명사로 알려졌으나, 늙어서도 워낙 출중했기 때문에 그럴 뿐 실제로는 젊은 시기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전국시대에 가장 뛰어난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탁월한 장수인 동시에 정치가로서도 안목을 갖춘 문무겸비한 인물이다. 또한 명재상 인상여와 문경지교의 의리를 맺은 바 있다.
조나라 효성왕 4년 기원전 260년, 염파는 장평대전을 치르는 도중 그를 시기하는 간신배 곽개는 진의 재상 범저의 책략에 넘어가 뇌물을 받아먹고 그를 끌어내려 조괄을 대장으로 삼고 나라를 망친 바 있다.
그 후 염파는 여전히 연나라를 침공하고 위나라도 포위하는 공적을 연달아 세워 이름을 떨친다. 이런 와중에 염파는 전후사정을 알게 됐고, 왕의 비호를 받고 있는 간신배 곽개를 소인배라고 모욕 준다. 염파는 인상여에게도 그랬지만 성질이 괄괄하고 급해서 참지 않는다. 열등감 덩어리 곽개는 인생 목표를 염파 죽이기에 두고는 사사건건 음해한다. 그는 황후에게 붙어서 왕에게 간언한다. 연나라와의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염파의 공적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곽개는 왕후를 움직여 염파가 너무 늙어 전쟁에서 질것이라 간언하였고 그를 소환하는 대신 젊은 악승을 보낸다.
조왕의 갑작스런 소환과 애송이 악승을 자신의 후임으로 보낸 사실에 염파는 진노한다. 옛날 장평대전 때도 이런 짓을 하더니 또 다시 자신을 내쳐서 전쟁을 망치고 나라를 멸망시키는 왕의 처사에 참을 수 없었다. 그는 후임으로 온 악승군을 공격해 쫓아내고 그 길로 위나라로 망명한다. 아, 간신배여, 못난 왕이여, 장군 염파여!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인사가 만사인데···.
호시탐탐 조를 집어먹을 궁리만 하던 진나라가 물실호기, 이 좋은 기회를 노칠 리 없다. 성동격서라고 진은 조를 낚기 위해 위를 친다. 진의 장난에 놀아나는 곽개는 위에 원군을 보냈는데, 진은 조군을 박살내고 그대로 조나라로 진격한다. 위기에 몰린 조나라 왕은 망명간 염파를 다시 불러들이고자 했다.
그러나 염파가 귀국하면 자신의 목숨은 끝이기에, 곽개가 가만있을 수 없다. 이때 염파의 노익장에 얽힌 처절한 일화가 나온다. 조왕은 염파의 상태가 어떤지 확신이 없었다. 장수로서야 최고지만 그의 연령이 너무 늙어 주저하는 마음이 일었다. 밀사를 보내 그의 상태를 살피게 했다. 염파는 조왕에게 잘 전하라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다. 그는 밀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밥 한말과 고기 열 근을 먹고, 한바탕 말 달리며 왕성한 무력시위를 한다. 이때 곽개가 뒤에서 또 다시 농간을 부린다.
곽개의 농간에 넘어간 밀사의 보고는 기도 안 찬다. “염파가 밥은 잘 먹는데, 식사 도중에 배 아프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꼴이 영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조왕은 염파의 노화에 그를 장군으로 쓰기를 포기한다. 염파는 결국 이리저리 헤매다가 초나라로 넘어가 그곳에서 죽고 만다. 그는 조나라 병사들을 지휘하고 싶다는 한 맺힌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백기 장군에 비하면 그래도 천수를 누린 셈이다.
염파의 망명으로 그 뒤를 이은 조나라의 장수가 이목이다. 이목 역시 명장이었으나 그 뜻을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천하의 간신배 곽개의 농간으로 죽는다. 조나라가 진나라에 패망했을 때, 곽개는 진나라 왕을 따라 함양성으로 갈 때 집안 곳곳에 숨겨 놓은 황금을 파내 수레 여러 대에 실었다. 함양성으로 가던 중 그를 노리던 정적들의 사주를 받은 도적떼의 습격을 받아 목숨도, 황금 수레도 모두 빼앗겼다.
배신자이며 간신배인 역적의 최후가 이러했다. 여기까지가 ‘천하통일’의 전편에 해당한다. 천하의 대거상 여불위와 진시황이 태동하는 후편에서 <아시아엔> 독자들을 만난다.(천하통일 제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