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22] 전국시대 마지막 대회전 ‘장평대전’, 진-조의 운명은?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범저의 원교근공책은 미약한 이웃나라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첫 번째 희생양은 전국7웅 중 가장 약한 이웃나라 한(韓)나라였다. 진의 명장 백기가 한나라의 야왕 지역을 급거 점령하자 인근 상당 지역의 17개현이 포위되었고, 상당의 태수는 백성들과 상의하여 상당지역을 엉뚱하게 조나라에 바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첫째 한나라 조정이 이곳을 도와줄 형편도 안 되고, 진나라에 대한 평가가 여러 나라 백성들한테 아주 나빴기 때문이었다. 상앙의 변법으로 인한 가혹한 법치는 진나라가 부강해지는 원인은 되었을지언정 백성들에게는 괴롭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로 진, 조, 한 3국은 국제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조나라 조정의 의견은 두 가지로 의견이 갈렸다. 하나는 상당을 받으면 필시 진과 분쟁이 생기니, 이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아무런 조건 없이 17개현을 얻는 건데 못 받을 거 뭐 있냐는 것 두 가지였다. 어리석은 조왕은 욕심만 앞서서 그 땅을 받자는 의견을 취하여, 조나라 군이 상당 지역으로 가서 피난민들을 위무하게 하였고, 한 술 더 떠 진나라의 만행을 만천하에 공포해 저네 조나라가 이토록 훌륭한 군자 나라임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강대국들은 조마조마 괜히 불똥이 튈까봐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였고, 결국 조나라만이 홀로 진나라와 맞서게 되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소탐대실’의 결과는 강대국 진과의 전면전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반면 강대국 진나라로서는 국제적으로 체면이 걸린 싸움을 벌여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저히 가만 두고 볼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 은근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나갔다고도 볼 수 있다. 진 소양왕은 즉시 장수 왕홀을 시켜 군사를 이끌고 상당지역을 접수하기 위하여 진군케 하였다. 그러나 조나라에서도 이미 각오한 바, 조왕은 명장 염파를 파견하여 백성들을 접수하고 진군을 막게 하였다. 양국 군대는 중원 깊숙한 지역에 위치한 장평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때는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와 조나라가 나라의 존망을 건 대회전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두 강대국을 비교하자면, 진나라에는 백기라는 명장이 있고, 조나라에는 명장 염파와 조사가 있다. 진나라에는 명재상 범저가, 조나라에는 인상여라는 명재상이, 진나라는 명 군주 소양왕이, 조나라에는 어리석은 효성왕이 있었다. 다 비슷한데 가장 중요한 왕의 품성과 능력이 비교가 안 된다. 인품과 능력 모두 하늘과 땅의 차이.
진과 조나라의 군대가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벌이게 되는 이 장평(長平)대전은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는 최고이자 최대의 대회전이 된다. 이는 마치 20세기 세계의 분쟁을 정리하고자 하는 미중 혹은 미소 양강의 세계대전에 비견될 만한 거대한 전투였다. 두 강국은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당초 조나라는 어떻게 하면 이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하여 가급적 이 전쟁을 피했다. 그러나 외견상 싸움을 먼저 건 쪽은 조나라였고, 진나라는 어쩔 수 없이 응수하는 척한 전쟁이었다. 진나라 입장에서는 물실호기였다. 진나라의 천하통일의 대망은 끝이 없었고, 원교근공책을 쓴 범저는 조나라를 희생양으로 하여 무조건 자신의 전쟁을 이겨야했다.
그런데 그토록 막강하게 조나라를 지켜왔던 명장 조사는 병으로 급사했고, 명재상 인상여는 병이 위중했다. 조나라는 나이 먹은 염파를 장수로 삼아 진나라를 막게 했다. 진나라가 여러 차례 조나라의 군대를 격파했지만, 조나라 군은 보루를 단단히 쌓고 나와서 싸우지 않았다. 진나라가 계속 도발했지만 염파는 응하지 않았다. 진나라군은 교착상태에 빠진 전선 때문에 원정의 피로가 쌓여갔다.
그러나 양국 조정은 각각 다른 이유로 초조했다. 전쟁이 자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의 혼군 효성왕은 다급했다. 싸우지는 않고 방어만 하고 있는 대장군 염파가 자신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효성왕의 열등감의 소산이다. 또한 진나라는 이 싸움에서 밀리면 뒤에서 조용히 관망하고 있는 다른 6국에 망신살이 뻗치게 되며, 천하통일의 길이 아주 멀어지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재상 범수는 드디어 그답게 승부수를 띄운다. 우선 진나라의 총사령관을 교체하는 것. 당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백기 대신 왕홀을 대장군으로 임명했던 과오에 대해 쿨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비밀리에 백전노장 백기로 대장군을 교체하였다. 이 사실은 일급비밀로 하여 발설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조나라의 명장 염파가 있는 한 승리를 가져올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의 전가의 보도인 이간책과 스파이전을 사용키로 했다.
갑자기 조나라 조정에 이상한 소문이 은밀히 돌아다녔다. ‘염파가 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뒤에서 진과 내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조괄이 장군이 되는 것이다’라는 것. 어리석은 조왕이 이런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에 조왕은 조사 장군의 아들 젊은 조괄을 장수로 삼아 염파를 대신하게 하려고 했다. 이때 재상 인상여가 병든 몸으로 기어나가 간언한다.
“왕께서 명성만으로 조괄을 쓰려고 하시는데, 이는 아교로 거문고 발을 붙이고 대충 거문고를 연주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그저 그 아버지가 전한 병서만 읽었을 뿐 전쟁의 묘법을 모릅니다.”
울면서 충언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조왕은 늙고 병든 인상여의 충언을 듣지 않고 기어이 조괄을 장수로 삼았다.
조괄로 말하자면, 그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혹평을 들을 만큼 이미 악명 높은 인물. 도대체 답이 없는 인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괄은 이론엔 강했다. 그는 천하의 명장 아버지 조사 장군으로부터 일찍이 병법을 배웠는데 모르는 게 없었다. 아버지 조사 장군도 이론으로는 아들을 못 당한다 했다. 그러나 조사 장군은 누구에게도 아들이 병법을 잘 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의 부인 조괄의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물으니, “괄이는 병법을 잘못 배웠소. 전쟁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닌데 괄은 너무 쉽게 말을 하오. 장수가 갈 길은 아니오”라고 했다. 조왕이 조괄을 장수로 임명하려하니, 그 어머니가 눈물로 왕 앞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