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21] 환관의 식객 ‘인상여’와 염파 장군의 ‘문경지교’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범저의 원교근공책의 가장 큰 희생양은 전통의 강국 조나라였다.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황하의 북쪽에 웅거하고 있는 이웃 조나라를 쳐야 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벌어질 진과조의 치열한 전쟁 이야기를 하기 전에 조나라의 아름다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그것은 ‘완벽귀조(完璧歸趙)’와 ‘문경지교(刎頸之交)’ 이야기다.
이즈음 북방의 조나라는 이웃나라 진의 욱일승천 떠오르는 기세에 짓눌려 있었다. 진은 사사건건 딴지 걸고 뭐든지 트집 잡으며 못 잡어 먹어 안달이었다. 조에는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보물이 있었는데, 진(秦)왕이 또 다시 시비거리를 찾아서 자신의 성 15개를 그 보석과 바꾸자 하였다. 조왕이 바보인가? 뻔한 수작이라는 걸 바로 간파한 조왕이 걱정이 태산이다. 그건 진왕이 보물을 거저 먹거나 시비거리를 찾자는 것이었다. 조의 조정에서는 말만 무성하고 누구하나 감히 나서는 사람 없었다. 괜히 진나라에 찍혀 죽거나 바보 되기 십상인 상황.
이때 환관 목현이 자신의 식객으로 있는 무명의 인상여(藺相如)를 추천한다. 마땅한 사람도 없던 차에 못 미덥지만 일단 선비로서 괜찮아 보이는 그를 사신으로 보낸다. 진의 수도 함양으로 간 인상여가 소양왕(昭襄王)을 알현하고 화씨지벽을 보여준다.
역시 진왕은 성 이야기는 하지 않고 딴전만 피운다. 이에 인상여는 진왕의 뜻을 간파하고는 “실은 그 구슬에는 조그만 흠이 있사옵니다” 하며 잽싸게 구슬을 빼앗아 들고 기둥 옆으로 달려간다.
인상여가 발을 구르며 진왕에게 토로한다. “모든 신하들이 진을 의심하는 중에도, 조왕께서는 진을 믿고 5일간이나 몸을 청결히 하고서 화씨지벽을 넘기셨습니다. 이러한 조왕의 신의를 진왕께서는 참으로 무례하게 대하시니, 이제 이 구슬을 제 머리와 함께 이 기둥에 박살내 부셔버리겠습니다.”
목숨 걸고 조나라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인상여를 가상히 여긴 진의 소양왕은 모든 일을 없던 일로 하였다. 조에서는 필시 인상여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시신을 국장으로 치르고자 준비했다. 그러나 인상여가 무사히 살아 돌아오자 조왕은 그를 상경으로 모셨다.
여기서 완벽귀조(完璧歸趙)란 말이 생겼다. 이 말은 “벽옥이 온전히 조나라로 돌아가다” “물건을 조금도 상하게 하지 않고 원래의 주인에게 온전하게 돌려준다”는 뜻이다. 오늘날 그냥 완벽이라 쓴다.
진이 다시 조를 집적거린다. 진왕이 양국의 우호를 다지는 회합을 갖자고 조왕을 초청한다. 초대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 찬반 논쟁 끝에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자는 염파 대장군의 건의로 조왕이 참가한다. 인상여도 대신으로서 조왕과 동행한다. 진 소양왕이 조왕에게 가야금을 한 번 타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는 “진왕이 조왕에게 슬(가야금)을 타게 하였다”고 사관을 시켜 기록하게 한다. 이는 물론 조의 자존심을 구기는 도발 행동이다.
이에 즉각 인상여가 진 소양왕에게 다가가 장구를 내밀면서 “진에서는 잔치 때 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는데, 한번 두드려 주시지요”라고 주문했다. 이는 진의 문화적 열등감을 자극하는 행위. 오랑캐 너희들은 장구나 치라는 뜻이다.
나라의 위기를 계속 구한 인상여는 더욱 지위가 높아지고, 이에 대장군 염파가 “나는 숱한 전투에서 목숨 걸고 전공을 세웠는데, 인상여는 일개 환관의 식객으로 별다른 무공도 없이 세치 혀만 가지고 지위가 누구보다 높아졌다. 반드시 그놈을 손 좀 봐주겠노라”며 식식대고 다녔다.
이후로 인상여는 염파와 만나지 않으려고 병을 핑계로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입궐도 염파가 없는 날만 하려고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수레를 타고 외출한 인상여는 길에서 염파와 우연히 마주쳤고, 기사한테 수레를 돌리게 하여 그대로 옆으로 숨어버렸다. 이러한 인상여의 모습에 실망한 부하들은 인상여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나리를 섬기고 있는 건 당신의 높은 뜻을 존경해서였는데, 오늘 나리의 행동은 한낱 필부(匹夫)조차도 부끄러워할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전혀 부끄러워 하지도 않으십니까. 더는 당신을 섬길 수가 없겠습니다.”
인상여는 “너희는 진왕과 염파 장군, 둘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운가?”라고 물었고, 부하들은 “당연히 진왕”이라고 대답했다. 인상여는 이렇게 답하며 부하들을 제압했다.
“난 그 진왕을 상대로 면전에서 싸왔고, 여기까지 왔다. 내가 염파 장군을 무서워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다만 진이 조를 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 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와 염파가 싸우면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치거나 죽게 된다. 누구 좋으라고 그러겠냐?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다.”
이 소문을 듣게 된 대장군 염파는 크게 느낀 바 있어 인상여에게 찾아가 그의 앞에 웃통을 벋고 꿇어앉아, 등에 지고 온 가시나무를 내밀며 “이 천한 놈이 현자를 몰라보고 마구 까불었으니, 이 채찍으로 원 없이 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속죄했다.
인상여는 “무슨 말씀을. 장군이 있기에 조가 있는 겁니다”라고 답하였다. 더욱 감동한 염파는 “인상여,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목을 바친다 해도 후회가 없겠소”라고 맹세했다. 인상여도 “나도 장군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을 바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위해 목을 바친다 해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고, 이것이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고사의 유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