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②] 춘추전국시대 순망치한 ‘궁지기’ 노예가 된 ‘백리해’
[아시아엔=강철근 국제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우나라의 궁지기(宮之寄)라는 어진 신하가 우공에게 백리해를 천거하자 우공은 백리해를 중대부에 임명했다. 우공을 같이 만나 본 건숙이 백리해에게 말했다.
우공은 욕심 많은 소인이라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으니 출사하지 말라 일렀으나, 백리해가 가난을 이유로 간절하게 고향땅에서 출사하겠다 말하니, 건숙은 그럼 그리하라며 혼자 떠나갔다. 백리해는 취임 즉시 부인을 찾았으나, 그의 부인은 삼십여 년 전에 이미 먹고살기 위해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없었다.
한편 당진의 군주 헌공(獻公)이 우나라의 이웃 괵나라를 정벌하려는 계책으로 미인계를 써서 괵공을 어지럽힌다. 괵공은 대부 주지교가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헌공의 계책대로 여색에 빠진다. 이때 당진은 우나라 우공에게 재물로 현혹하여 당진을 먼저 믿게 한 후에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려 괵을 멸하려는 전략을 세운다. 당진의 헌공은 ‘수극지벽(垂棘之璧)이라는 보물과 어가를 끄는 네 필의 굴산지마(屈産之馬)라는 명마 두 보물로 우공을 유혹한다.
이때 대부 리극(里克)이 옆에서 “우나라에는 궁지기와 백리해라고 하는 두 사람의 현신이 있어서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간하자, 헌공이 말하길 “우공은 탐욕스럽고 어리석어 비록 두 사람이 간하더라도 절대 따르지 않을 위인”이라며 자신의 비책을 확신했다.
우공은 역시 예측대로 당진이 가져온 수극지벽과 굴산지마를 보자마자 정신을 못차리고 당진의 계책에 말린다. 더구나 길을 빌려주는 대가로 노획하게 되는 모든 전리품을 준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당진의 모략에 빠져 이를 승락하려는 우공에게 궁지기가 간했다.
“안 됩니다. 옛말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이 있습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괵국이 망하면 내일은 틀림없이 그 화가 우리 우나라에 닥치게 됩니다.”
“당진은 괵국보다 열 배나 강한 나라이다. 괵나라를 버리고 대신 당진을 새로 얻는다면 어찌 이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에 백리해가 궁지기를 말리며 끌고 나온다.
“어리석은 자에게 올리는 좋은 말은 마치 아름다운 구슬을 길거리에 버리는 행위와 같다고 했습니다. 더 말하면 그대가 위태로워집니다”
우공이 탐욕을 부리며 당진군의 향도가 되어 괵나라의 하양성을 향해 진군했다. 그때 하양성은 대부 주지교가 지키고 있었다. 주지교는 괵나라를 돕기 위해 우공이 구원군을 끌고 왔다는 말에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관문을 열어 맞아 들였다. 그러나 우공이 몰래 끌고 온 당진군은 괵군을 불시에 공격하여 접수한다.
주지교는 휘하의 군사들과 함께 당진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리극의 당진군이 계속 여세를 몰아 괵의 도성을 공격하니 성안의 병사와 백성들이 다 죽어가고 있었다. 괵공은 한밤중에 가솔들과 함께 주나라 도성을 향해 도망쳤다. 괵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성에 진입하는 당진의 군사들을 반겼다.
리극은 괵나라의 창고에 있던 금은보화 절반과 괵공이 거느렸던 미녀들을 모두 우공에게 주었다. 수많은 보물과 미녀들을 받게 된 우공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궁지기의 간언대로 당진군은 돌아서자마자 곧장 회군하여 우나라를 공격한다. 이에 우공이 한탄하며 말했다.
“궁지기의 간언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처하게 됐으니 참으로 후회스럽구나!”
당진의 헌공이 우나라에 진입하여 꿇고 있는 우공을 만나 웃으며 말했다.
“과인은 옛날 맡겨놓았던 수극지벽과 굴산지마를 돌려받기 위해서 이곳에 왔소!”
우공은 보물도 도로 뺏기고 당진군의 병영에 포로로 잡혀 있게 되었다. 대신들 중에 오직 백리해는 우공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따라 다니며 모셨다.
당진국에 항복하여 대부의 벼슬을 받은 주지교가 백리해의 충심과 현명함을 알고 헌공에게 천거했으나, 오히려 백리해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는 원수의 나라인 이곳 당진에서는 벼슬을 구하지 않겠다 했다.
그때 부인이 없던 섬진(陝秦)의 목공(穆公)이 당진의 헌공에게 청혼을 해왔다. 헌공이 목공에게 그의 딸 백희와의 결혼을 허락하고 그녀에게 보낼 몸종을 구하는데 백리해에게 제안을 거절당해 자존심이 상해 있던 대부 주지교가 간했다.
“옛날 우공의 신하였던 백리해는 우리 당진의 벼슬을 받지 않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노예로 만들어 섬진으로 보내시죠.”
헌공이 백리해를 그의 딸 백희의 몸종으로 삼아 그 일행에 넣어 섬진으로 보낸다. 졸지에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여 섬진으로 가게 된 백리해는 기가 막혔다. 자신의 기구한 신세를 또 다시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