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⑩] 상앙, 법 어긴 태자의 스승 코 베어

진시황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잠깐 돌아보면, 춘추 5패인 제, 진, 초, 송, 진 등의 춘추시대에는 그래도 주나라의 정치질서인 ‘예(禮)’가 존중되었으나, 기원전 453년 강력했던 진(晋)나라가 한(韓)·위(魏)·조(趙) 세 나라로 분리되면서 살벌한 전국시대가 펼쳐졌다. 당시 가장 강력했던 전국 7웅은 위의 세 나라 외에 진(秦)·초(楚)·연(燕)·제(齊)의 7국이다.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신하가 왕을 죽이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약육강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전쟁에서의 패배는 바로 패망의 수순으로 들어갔다. 예의는 이미 쓰레기통 속으로 버려진지 오래다. 오직 주나라의 왕만이 왕이라 칭할 수 있었는데 이젠 다른 나라들도 제멋대로 ‘왕’이라 부르게 되면서, 이름뿐이던 주 왕실의 권위도 그나마 없어져 버렸다. 이 가운데 초기에 패자의 자리를 다툰 것은 위·제·진 세 나라였다.

제나라는 유명한 병법가 손빈(孫臏)의 계책을 써 위나라 장수 방연을 마릉(馬陵)의 싸움에서 패사시키고, 진(秦)의 효공은 법가 정치가인 공손앙(公孫鞅, 상앙)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위한 일대 정치개혁을 실시하여 천하통일을 위한 기반을 다져갔다. 개혁은 고통스러운 것. 기득권을 가진 귀족들은 반발했고 왕조차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상앙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효공을 설득했다. “왕이시여, 부국강병의 길은 멀고 험합니다. 시대를 앞서서 길을 개척하는 일은 더 그러합니다. 이를 두려워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반대 여론도 수그러질 것입니다.”

상앙은 계속하여 행정제도를 개혁하고, 십오제(什伍制, 오늘날의 통반제)를 채용하여, 진을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이러한 상앙의 변법운동에 의해 진은 철저한 법치주의 국가로 변모하였고, 국내의 생산력, 군사력을 높여 서서히 다른 6국을 압도하여 갔다. 효공은 기원전 350년, 도성을 함양으로 옮기고 본격적인 천하경영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진나라 귀족들은 모두 연합해 변법을 저지하려 하였다. 변법 반대 상소가 진왕 효공에게 벌써 수천개가 쌓여 있었다. 상앙은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키지 않는 이유는 첫째, 백성들이 정부에서 하는 일을 믿지 못하고, 둘째, 귀족들이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윗놈들이 안 지키는데, 아랫것들이 지킬 까닭이 없는 것. 상앙은 이것이 가장 큰 폐단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법을 비난하는 것도 막았지만 칭찬하는 자 또한 처벌했다. 이는 “백성들은 법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법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없다”는 강한 법치주의에 입각한 태도였다.

그러던 중, 상앙의 법치를 시험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쩌면 상앙의 개혁세력도 태자의 수구세력도 양 진영 모두가 마음속으로 기다리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태자가 고의로 법을 위반한 것이다. 태자는 노골적으로 “상앙, 네가 어쩔 건데?”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항상 “법 앞에 예외 없다”를 천명한 효공과 상앙이었지만, 장차 다음 왕권을 물려받을 태자를 벌할 수는 없었다.

상앙은 고육지계를 택했다. 태자 대신 태자의 스승을 처벌했다. 태자의 스승은 태자의 백부인 공자 건이었다. 상앙은 태자 대신 그 스승의 코를 베면서 태자의 죄를 물었다. 그리고 태자의 다른 스승들은 모두 먹물로 얼굴에 문신을 새겨 넣어 죄인임을 공표했다. 황족인 공자 건은 충격을 받고 물러나 은둔했고, 태자는 길길이 뛰었다.

태자는 이를 갈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천하의 상앙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했다. 이때 무너지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것.

20년간 지속된 변법으로 나라는 예와 인보다 법이 앞서는 통제 국가가 되었고, 진나라는 경제력을 갖춘 강력한 군사강국으로 우뚝 섰다. 상앙은 정치, 경제, 군사, 외교를 총괄하는 실권자가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상앙은 눈엣가시 같은 강대국 위나라를 정벌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진의 천하통일을 위한 전초전이기도 한 것이다.

일단 위에 사신으로 가서 정세를 살피기로 했다. 위나라 혜왕은 이제는 천하대국 진의 2인자로 큰 그를 후하게 대접했다. 옛날이야기를 하며 두 사람은 멋쩍게 웃고 떠들었다. 상앙은 위나라 혜왕에게 위나라와 제나라가 분쟁이 발생해도 진나라는 중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위나라의 관심을 제나라로 돌리고, 그동안 진나라를 정비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얼마 후, 상앙은 5만 대군을 이끌고 위나라를 공격했다. 다급해진 위나라에서는 수비대장으로 공자 앙을 임명하고 상앙을 막게 했다. 공자 앙은 상앙이 위나라에 있을 때 친분이 두텁던 관계였다. 공자 앙은 이 전쟁을 상앙과의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순진한 공자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었다. 전국시대의 공자라면 아무리 친구라도 적국의 재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상앙은 물론 “생큐!” 하며, 이를 역으로 이용했다. 그는 공자 앙에게 편지를 보냈다.

“진나라는 위나라와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 하며, “주력군은 잠시 뒤로 물리고 중간지대에서 만나 회포나 풀면서 해결책을 찾자”는 내용이었다.

공자 앙은 실제 진나라 군이 철수하는 것을 보고 중간지대인 옥천산으로 향했다. 수행원은 측근 몇 명뿐이었다. 상앙과 공자 두 사람만의 술자리가 진행되었다. 술이 거나해지고, 잠시 상앙이 자리를 뜨면서 신호를 보내자 매복해 있던 진나라 군이 일제히 공자 앙을 공격해 그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진나라는 여세를 몰아 대군으로 위나라를 공격했다. 위의 수도인 안읍까지 포위당하자 위나라 혜왕은 수도를 버리고 도망갔다.

상앙은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당대의 모든 나라와 사대부들은 일제히 상앙의 이번 작전을 ‘신의를 저버린 배신행위’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진효공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앙을 최고지위란 뜻의 전례 없는 직위인 대량조에 임명하고, 그를 ‘열후列候’에 봉했으며, ‘상商’ 지역 15개 마을을 봉토로 주었다.

따라서 이름도 공손 앙에서 상앙으로 불리게 되었다. 상앙은 명실 공히 진효공과 함께 진나라를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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