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①] ‘인재의 바다’ 춘추전국시대 진秦 목공穆公 시대 ‘백리해’

춘추전국시대

[아시아엔=강철근 국제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장강의 물결이 도도히 흘러가듯이,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치고 가듯이 인류의 역사는 흘러간다.

중국 최초최대의 천하통일을 이룩한 진나라. 그 역사 속에서 무수한 인간들과 영웅들과 사상가들이 명멸했다. 500여년간 최고의 인간드라마가 펼쳐졌던 춘추전국시대를 정리하고 중국 최초최대의 천하통일을 이룩한 진나라.

그 장대무비한 이야기에는 인간사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진나라의 천하통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너무도 매력적이고 동시에 처절했던 무한경쟁의 시대, 춘추전국시대를 가르고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가슴 속의 열정과 비수 같은 머리싸움을 통해 천하는 진나라에게 돌아갔왔다. 중국 최초의 제국, 세계최대의 제국을 수립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우리는 가슴 뿌듯한 감동과 비애와 인류의 꿈을 만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간단히 말하면, 주나라가 서북방의 오랑캐를 피해 수도를 동쪽의 낙양으로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동주시대로 불리며, 이른바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저마다 제후국으로 나서며 주나라를 형식적으로나마 섬기며 힘을 길렀다. 수많은 제후국이 각기 부국강병과 천하통일을 목표로 나아가니 이러한 천하쟁패의 시대를 동주시대의 列國志 혹은 춘추시대라 한다.

주나라 초기에 1천여국에 이르던 제후국의 수가 140여 개국으로 줄더니 마침내는 10여개로 압축되었다. 이 가운데 패권을 잡은 제후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한다. 오패는 제의 환공, 진(晋)의 문공, 초의 장왕, 오왕 합려, 월왕 구천이라는 설과 오왕 합려, 월왕 구천 대신 송의 양공과 진(秦)의 목공이라는 설이 있다. 후자의 학설이 타당하다.

3백여년 지속되던 춘추시대는 기원전 453년 강력했던 진(晋)나라가 한(韓)·위(魏)·조(趙) 삼씨 성을 가진 세 나라로 분리되면서 그나마 유지되던 동주시대의 평화가 깨지며, 주황실을 개똥 취급하며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 시대는 오직 힘을 기르고 약육강식의 정글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 이른바 전국시대가 펼쳐졌다. 무지막지한 전국시대의 패자들은 여차하면 먹고 먹히는 정글 속에서 살아남은 7개국을 말하는데, 사가들은 이들을 전 시대의 춘추 5패와 함께 전국 7웅이라 한다.

그들은 진(秦)·초(楚)·연(燕)·제(齊)·한(韓)·위(魏)·조(趙)의 7국이다. 길고도 긴 춘추전국시대는 550여년간의 투쟁 끝에, 기원전 221년 진나라에 의해 정리되며 끝난다.

원래 진(秦)나라는 서북 지역 이민족 속의 미미한 나라에 불과했다. 기원전 771년 주나라가 서북방 오랑캐 견융의 침략으로 망해갈 때, 진의 초대 군주였던 진양공(晉襄公, 재위 기원전 777~766)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 주나라를 구원하고, 동주의 낙읍으로 천도할 때 지성으로 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은 소국의 영주로서 주의 천자에게 직접 조회를 드리지 못하고 5등급 이내에 속한 제후들이 조회를 드리러 갈 때 곁다리로 뒤에 붙어서 조회하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진나라는 종주국 주나라를 도운 공로로 백작국(伯爵國)으로 승격되었고, 다시 주나라가 버린 기산(祁山) 이서(以西)의 땅을 할양받아 명실 공히 강대국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원의 정통 제후국인 제나라나 초나라는 오랫동안 진을 마음 속으로 오랑캐 나라라고 깔보았다.

주에게서 양도받은 그 땅은 사실 주나라가 다스릴 수도 없던 오랑캐의 땅이었다. 당연히 오랑캐와 끝없는 싸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불모지였다. 하여 초대 왕 진양공을 포함하여 여러 명의 군주가 오랑캐와의 싸움 중에 전사했다.

진나라의 초석을 다진 현인 재상 백리해(百里奚)

그렇게 거친 세월은 흘러갔고, 명맥만을 유지하며 진은 북방에서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100여년이 흘러가고 드디어 제9대 왕 진 목공(穆公, 재위 기원전 659~621년)의 시대가 왔다.

진정한 진나라의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사가들은 나라 구분을 위해서 이때의 진나라를 섬진(秦)이라 하고, 또 다른 강자 진나라는 당진(晉)이라 하였다.

진의 제9대 왕 목공은 패권지도를 지향하는 영명한 군주. 그와 함께 진의 초석을 만든 현인 재상이 있었으니, 그가 백리해(百里奚)다. 인재의 바다 춘추전국시대 당시 진나라에도 현자들은 백리해뿐 아니라 건숙(蹇叔), 비표(丕豹), 공손(公孫) 등 즐비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가장 스토리가 많은 인물은 단연 백리해였다.

이제 장편 ‘천하통일’의 장대한 이야기, 진나라 통일의 역사 이야기를 본격 시작한다. 진나라의 초석을 만든 첫번째 ‘백리해와 진 목공’의 길고 긴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작고 빈한한 나라 우 나라의 백리해(百里奚)는 제나라의 관중에 비견될 정도의 탁월한 경륜과 천하쟁패의 포부를 지닌 현자였다. 그러나 그는 가난했다.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인생이 늘 그러하듯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한 번 안 풀리기 시작하면 불운은 계속되는 법. 인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 그런 거다.

백리해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 두(杜)씨에게 장가를 들어 아들 하나를 얻었다. 백리해는 집을 떠나 벼슬자리를 구하려고 했지만, 처자를 두고 차마 떠날 수 없었다. 그때 백리해의 처 두씨가 말했다.

“남자는 그 뜻을 천하에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이시여, 저희들 두 사람은 괘념치 마시고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십시오. 저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테니 걱정 마시고 떠나세요.”

두씨는 없는 씨암탉을 잡았으나 땔감이 없어 문빗장을 뜯어서 불을 피워 조리를 하고 아직 덜 익은 조 이삭을 베어와 절구에 찌어 밥을 지었다. 백리해가 그 밥을 어떻게

먹었을까? 온갖 상념에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길을 나섰다.

이때 두씨가 아들을 품에 안고 백리해의 소매를 붙잡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부귀하게 되면 부디 우리 모자를 잊지 마십시오.” 그저 하릴없이 묵묵히 길 떠나는 백리해. 피눈물 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 그저 목이 멘다.

백리해가 가족과 이별하고 자리를 구했으나, 무작정 떠난 길에 누가 그를 돕나. 결국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다가 세월을 보내고 이미 마흔 살의 나이가 되고 또 나이 반백이 되었다. 한 가지 소득이 있다면 길에서 의인 건숙(蹇叔)을 만나고 의형제를 맺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