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공자·군자 그리고 정치] 공자가 광화문 촛불시위 보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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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오권수 중국고전 연구가] 오천년 중국사는 주변 이민족들과의 투쟁사다. 이는 곧 아시아 정치경제사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고대사회는 정복을 원동력으로 하여 경제력과 노동력이 운용됐다. 정복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부국강병이 필수였는데 이는 바로 체제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중국 고대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고 필요한 인재를 등용했다.

따라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절대 왕정국가의 출현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강력한 왕을 중심으로 주군에게 충성하는 귀족과 사대부가 상층부를 이루고 평민과 노예가 이를 받쳐주는 신분제 사회의 유산이 현대 아시아 각국의 사회계층 제도로 연결됐다.

국왕은 이들 귀족 및 사대부의 전횡방지와 공정한 사회질서를 세우기 위해 철저한 검증을 실시했다. 공경대부와 선비 계층은 정치에 참여하여 민생 해결에 골몰하게 되는데 이들은 군자 혹은 위정자로 불렸다. 이들이 영어로 표현하면 리더(leader)였다.

<논어>에 나오는 군자는 리더 즉 지도자를 의미한다.공자는 군자 자신의 엄격한 수행 곧 육례의 수련을 통해 자질을 향상시킨 후 정치에 임하면 이상사회가 도래한다고 봤다. 육례엔 예, 악, 사, 어, 사, 수(藝 樂 射 御 書 數)가 포함된다.

논어는 또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자기를 이기고 예를 따르는 것이 정치의 기본으로 군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역설했다. 지도자의 책무를 중하게 봄으로써 사회질서가 유지된다고 본 것이다. 공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중기 춘추전국시대다. 춘추시대는 사회 혼란과 제후국들의 발흥으로 극도로 혼잡하던 시기다. 사대부 이상 선비들이 질서를 바로잡고자 치열한 사상논쟁을 벌인 시기이기도 하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그런 시기에 군자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일정한 틀이나 무리에 얽매여 말하고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군자불기, 君子不器)고 공자는 말했다. 군자, 즉 지도자는 조화로우면서도 자신의 뜻과 이상에 반하여 집단에 동화되지 않는다.(화이부동 동이불화, 和而不同 同而不和)

군자는 또한 철저히 지도자 수업을 쌓은 후 인민들을 가르치고 정치에 임해야 했으며, 정치의 핵심은 바름과 옳음을 수행하는 것이고 옳은 대로 정치를 하면 백성의 삶이 나아진다고 보았다.

결국 정치란 부국강병의 기치를 백성의 입장에서 펼 준비가 되어 있는 군자 즉 지도자의 솔선수범에 있다고 보았다.(눌언민행, 訥言敏行) 백성의 입장에서 정치를 한다는 말은 즉 백성들의 행복을 위한 부국강병의 요소로 족식, 족병, 족신(足食 足兵 民信)이 충족돼야 한다. 그런데 부득이 하나씩 없애도 된다면 족식, 족병, 족신 순으로 매길 수 있다고 공자는 말했다. 결국 최후의 보루는 백성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는 것이다.

백성의 신뢰를 얻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논어는 이렇게 답한다. “올곧고 바른 자를 천거하며 부패하고 굽은 자는 버려라.” 바른 정치에 바른 인재의 등용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본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조선 영정조 이후 붕당세력 중 노론에 의한 세도정치가 이어져 기득권층에 편입한 세력들의 세습 이후 인재의 부재는 군자에 의한 정치의 실종을 낳았다. 방법이 잘못된 절차에 의한 부의 축적으로 졸부가 된 자, 인격이 겸비되지 않은 명문학교 졸업자, 정치모리배들의 이합집산인 정당의 추천을 받은 자들이 군자, 지도자의 자리를 꿰차고 있지는 않은지? 국민들의 신임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정치인이 리더로서 설 길이 없다는 것을 <논어>는 우리에게 뼈저리게 알려주고 있다.

세상이 무척 혼란스럽고 자연현상 역시 너무 자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반도의 북핵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영국의 EU 탈퇴, 러시아와 중국의 패권 다툼,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국제사회를 불안케 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태풍, 허리케인, 지진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속출하고 있다. 하나뿐인 지구 위에 생존하는 인류의 행복은 언제 찾아질 것인가? 그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은 더 나아질 것인가? 나아진다면 누구에 의해 언제, 어떻게 나아질 것인가? <논어>를 다시 찾아 꼼꼼히 읽는 것은 바로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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