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정 목사의 산티아고 통신] 산에서 길을 잃다
[아시아엔=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 까미노 산티아고 스물세번째날,
Foncebadon에서 Ponferrada까지 26킬로. 처음 산 정상에 높은 철탑 십자가 가 있는데 그곳은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 놓는 곳이란다. 앞서 가던 한국인이 두꺼운 외투를 벗어 놓는다. 완전 방한용이라 쓸모는 없고 짐이 되니 벗어 놓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20일 전에 길에서 잃어버린 새 방한용 입마개가 걸려 있다. 죄스러움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주인에게 돌려주려는 것일까? 하여간 되찾으니 기분이 좋다.
그런데 점심 때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길이 갈라지는데 내가 생각에 골몰하느라 표지판을 못봤는지 모르겠는데 양쪽 길이 모두 같았다. 해를 보면서 서쪽길을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다음 Riego 마을은 동쪽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
30분이면 도착하는 걸로 보았는데 마을이 안나타난다. 보니까 계곡을 사이로 산 하나를 넘어야 했다. 그래서 이 마을은 그냥 건너띄기로 하고 앞으로 난 길을 계속갔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없다. 출구가 없다는 사인이 붙어 있다. 난감하다. 천미터고지 산길이다. 농지나 황야라면 방향보고 가겠는데 숲속이라 그럴 수도 없다.
다시 돌아올라 오면서 생각해 본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우선 까미노 길과 소방도로 길이 겹쳤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착각을 한 탓에 길이 똑같았다. 그리고 여름 순례객들 중 소수가 따가운 햇빛을 피해 숲속 길을 만들어 놓아 이런 착각이 생겼다.
다시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어 구글맵을 두들기니 샛길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 또한 문제이다. 길은 길인데 사람이 다니지 않아 가시나무들이 앞을 가린다. 계속 가다보니 계곡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간다. 두시간 가까이 숲속에서 헤매다 보니 기운이 없다. 그래서 이 마을은 포기하고 다음 마을로 방향을 정하고 산정상 길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계곡을 따라 작은 길이 나있다. 까미노 길은 아닌데 계곡을 따라가면 다음 마을이 나오지 않을까 하여 이 길을 선택했다.
완전히 실수다. 이제 돌아서는 건 어렵다. 그래서 계곡 세개를 건너는 힘든 산행이 되었다. 천미터 높이의 깊은 계곡을 사이로 까미노 길과 평행으로 가는 산행길이다. 이 길은 마을 사람들의 산행길이다. 위험한 곳도 여러 곳. 근 세시간을 걷는다. 먹을 음식도 물도 없다. 가다보니 한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다. 염치를 무릎쓰고 물과 음식을 요청하니 쾌히 나눠준다. 기념으로 북마크를 줬다.
결국 오늘은 쉼없이 열시간을 걸었다. 기진맥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