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정 목사의 산티아고 통신] 하루 24시간 120km 걸은 순례자, 사흘 뒤 ‘초죽음’
[아시아엔=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 까미노 산티아고 열여섯째 날, 30Km 9시간 걸려 모라티노스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모두 집이 9개니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도…. 그중에 교회가 하나 숙소가 셋, 알베르게는 닫혔고 호스텔만 열려 있는데 10유로이다.
그러나 베들레헴이 작다고 무시해서는 안 되듯이 시설은 지금까지 묵은 숙소 중 제일 좋다. 큰 창문으로 밖의 정경이 다 보이니까….
2016 마지막 날, 6명의 순례자(한국인 2 이탈리아인 2 아르헨티나 호주 여성)가 함께 10유로짜리 조촐한 디너를 먹는다.
십 대 이후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송년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오늘은 이상하게 5년째 걷고 있는 미가엘이란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른 아침 걷고 있는데 텐트를 걷고 있던 그가 나를 불러 서로 아침 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한 시간을 더 가서 쉼터가 있는데 누가 갖다 놓았는지 귤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천사의 선물로 알고 하나를 먹고 있는데 마이클이 와서 다른 한 개를 먹었다. 20분가량 걸어갔는데 “자기가 젖은 텐트를 말리는 곳”이라며 멈췄다.
거기서 내가 아침에 만든 마늘 토마토 수프 반을 나눠주고 서너 시간을 걸어가다가 쉬고 있는데 그 친구가 와서 함께 두시간을 같이 걸었다. 그 친구는 자기가 텐트를 치는 장소가 있어 더 걸어갔다.
여러 얘기를 들었다. 내가 목사라고 사적인 얘기도 한다. 아내가 일찍 죽은 얘기 자녀 셋이 있는데 아들은 뉴욕에 있고 딸은 자기 집을 관리하고 있고 낡은 상자 안에 갖고 있는 오백 유로짜리 두 장도 보여 준다. 그런데 행색이 그렇게 보이는지 은행에서도 돈을 적은 돈으로 바꿔주지 않는단다. 조금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하여간 그는 돈을 굳이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름에는 일한다.
누가복음 18장 32절 말씀대로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한다. 직업은 엔진기술자, 한때 현대모터스랑 일을 하기도 하여 서울에도 머문 적이 있다.
깨달음(?)이 온 이후 집을 떠나 순례자가 되었고 자본주의 소비주의에 저항하는 사람이 되었다. 벨기에 군인으로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미국의 세계패권주의를 알았고 독일에서는 녹색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녹색당 또한 자본의 포로가 되었다고 질책한다. 피스보우트가 몬사토의 큰돈을 후원금으로 받는데 그걸 받지 말자고 주장하다 녹색당도 떠났다.
들은 얘기 중 하나는 이렇다. 10년을 세계를 걸어 다니는 순례 중, 일본인 기독교인이 어느 날 자기 집에 와서 하루 머물기를 원해 들어오라고 했더니 유럽에서는 처음이라고 하더란다. 그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자 중 13년을 쓰레기만 주우면서 다니는 프랑스인 얘기. 맨발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한국 사람 얘기. 오늘 내가 출발한 마을에서부터 120킬로를 24시간 쉬지 않고 걸은 한인 이야기. 그런데 그 친구는 3일 후에 맥도날드에서 만났는데 거의 죽어 있더라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