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DMZ평화통일대장정 대학생수기⑤]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행복한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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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은지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 3년] 작년 가을, 나는 스페인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불리는 길을 걸었다. 약 800km의 길을 걸어가는 35일간의 여정. 나에게는 인생 첫번째 장기여행이자 첫 도보여행이었다. 그 해 초부터 머물렀던 프랑스에서의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마무리 짓는 여행이기도 했다. 사실 처음엔 대단한 의미를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깨에는 12kg에 달하는 배낭이 메여 있었고, 눈앞에는 피레네산맥을 시작으로 하루 평균 25km가 되는 길이 펼쳐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 가벼운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 길이 주는 무게는 상당했고, 매일 새로운 종류의 고통, 감정, 경험, 생각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어느덧 도보여행의 참맛과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얻어가던 즈음, 문득 그런 생각에 미치게 됐다.

‘남의 나라는 800km나 걷고 있으면서 정작 우리나라는 걸어본 적이 없잖아?’

그 깨달음은 나를 다음 목표점인 국토대장정으로 연결해 주었고, 우연히도 지원 마감일에 이번 대장정을 알게 됐다. 모집 포스터에 있는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라는 슬로건은 내 모토와 같았고, 아무나 갈 수 없는 DMZ 지역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한층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마침 최근에 강화도에 다녀오는 등 통일과 안보에 대한 의식과 관심 또한 높아져있는 상태였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마법처럼 합격을 하면서 감사하게도 꿈을 이룰 기회를 얻게 됐다. 몇 주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물을 체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다보니 어느새 7월 8일 금요일, 신한대학교로 갈 시간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다! 도-전, 도-전, 도-전! 대한민국 DMZ 평화통일 대.장.정!”

전날 밤부터 발대식장에 오기 전까지 수도 없이 맞춰보고 연습한 구호를 우렁차게 외쳤다. 우리 나름 괜찮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배웅해주시는 분들과 씩씩하게 악수를 나누고 발대식장을 빠져나왔다. 광화문 거리를 건너가기 위해 뛰어가는 동안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사실 마음 한편에선 나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

350km의 대장정을 하겠다고 모인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었으며, 파주 임진각까지 가야 할 ‘대원’이 되었다. 115명이나 되는 대원들이 하나처럼 움직이고, 또 안전하게 끝까지 가려면 지켜야할 것, 따라야할 것이 많았다. 혼자 다녀서는 안 되고, 항상 ‘오와 열’을 맞춰야 하고, 늘 부족한 시간이어도 칼같이 준수해야 하고, 목소리는 크게, 여기저기서 들리는 ‘다’나 ‘까’ 말투와 통제의 시선까지…. 입대해본 적은 없지만 입대한 기분같은(?) 것이 들기도 했고,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가 된 기분도 들었다. 특히 여자대원들은 곁눈질 해가며 남자 대원들을 열심히 따라했지만, 그럼에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적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예고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상황 앞에서 우리의 긴장은 풀어질 틈도 없이 그대로 조여졌고, ‘여기 있는 게 잘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새어나오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두 가지 갈림길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 사소한 이유들로 목표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편안함에 안주하려던 나약한 자신을 밀어내고, 엄대장님께서 말씀하신 ‘自勝最强(자승최강)’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다. 우리 땅을 걸어보고 싶었던 초심을 떠올려내고, 고생 끝에 맺힐 달콤한 열매를 머릿속에 그렸다. 그렇게 ‘포기’라는 선택지를 지우고 나니 어떻게 더 즐겁게 생활할까, 어떻게 더 보람차게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들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대장정 시작과 동시에, 나는 혹은 우리는 첫번째 고개를 넘었다.

기러기는 혼자서는 결코 먼 길을 가지 못한다

15박 16일 동안 우리를 챙겨주시고 이끌어주신 진행 실장님께선, 매일같이 “기러기는 혼자서는 결코 먼 길을 가지 못한다”는 말을 해주셨다. 그렇지만 몸 상태도 괜찮고, 여정도 수월해 행군에 별로 부담이 없던 초반에는 언제쯤 우리에게 그런 동지애가 피어날지 궁금했고, 서로의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친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행군 3일차, 첫 고비로 꼽히는 ‘진부령’을 넘는 날이 왔다.

“남자 대원들, 여자 대원들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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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높아지는 요원님들의 목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헉헉대는 여자 대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낮게 넘는 길이라고는 해도 그곳은 태백산맥이었다. 한여름의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어깨 위 10kg는 족히 될 배낭을 메고, 마음대로 쉴 수도 없는 빠른 속도의 대열을 따라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혼자 잘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패기 있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문제는 엉뚱한 데에서 터졌다. 갑자기 몸에 한기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스러워 겁도 나고, 점점 어지럼증, 구토감 등으로 증상은 확대되어갔다. 무서워서인지 아파서인지 눈물도 나고, 조금만 참을까, 뒤로 빠질까 갈등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팀원들이 나를 보며 괜찮으냐고 묻기 시작했다.

내 몸 하나 못 챙겨 동생들에게 걱정을 받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그냥 올라가기도 힘들 텐데 주변 사람들까지 챙기는 대원들에겐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더더욱 멈출 수가 없었다. 가빠지는 호흡을 어떻게든 잡아보려 하면서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남자 대원들이 불러주는 노랫소리, 파이팅을 불어 넣는 각 팀의 구호 소리, 옆 사람을 밀어주는 응원 소리가 길 위에서 뒤섞여가고, 어느 순간 그 사이로 요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해냈다는 환호와, 악과, 눈물이 섞인 목소리로 표지판을 바라보며 외쳤다.

“여기는 진부령 정상입니다!”

곧 그날의 중식지에 도착했고, 서로에게 “수고했다”,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고, “잘했다”, “멋있었다” 하는 격려를 나눴다. 간호사님들을 찾아가 여쭤보니 내 증상은 다행히 가벼운 탈수 증세였다. 혼자 해낼 수 있다던 자만심이 겸손해지고, 나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동생들을 보며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날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진부령을 넘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될 고개들을 함께 넘어가는 방법을 배웠다. 실장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점점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하나다

어느덧 여정 중반, 평화의 댐에서 하루를 쉰 후에는 완주식까지 쉼 없이 7일을 내리달릴 일만 남아 있었다. 매일 30km 내외의 긴 코스가 예정되어 있었고, 피로는 가실 줄을 모른 채 우리 몸 구석구석에 달라붙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단연 큰 문제는 발 상태였다. 물집 몇 개 정도는 예삿일이고, 발의 절반이, 발가락 전부가 물집으로 덮인 친구, 발목이나 인대에 무리가 온 친구들까지 있었다. 팀마다 집으로 가는 인원도 한 명씩 늘어났다. 우리 팀에는 아직 귀가 인원이 없다는 것에 내심 자랑스러워하고 있었지만, 힘겹게 걷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11일차, 우리 팀에도 귀가를 결정하게 된 팀원이 생겼다.

일정 초반부터 양 발의 인대가 늘어났던 그 친구는, 집에 갈 거라는 말을 매일 장난처럼 하면서도 1주일도 넘게 잘 걷고 있었다. 그렇기에 설마 올까 했던 그 상황이 믿기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우리와 다른 옷을 입고 서있는 그 친구의 숨겨지지 않는 씁쓸한 표정에 우리는 하나 둘씩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꺼내 팀 전원이 함께하는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었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더 장난스럽게, 농담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 때까지 변함이 없던 우리 팀 인원 보고는 ‘총원 29명, 사고 1명, 현재원 28명’이 되었고, 팀원들 사이에는 더 잘 해야겠다는 긴장감 같은 것이 맴돌았다.

때로는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던 ‘우리는 하나다’라는 말은 점점 진가를 발휘해가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모두 신기할 정도로 강점, 장점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의 약한 부분을 서로가 채워주었다. 강한 체력으로 팀원들을 많이 도와주는 친구, 누구보다도 밝고 귀여운 매력을 가진 친구, 배려심과 희생정신이 넘치는 친구, 리더십이 강한 친구, 노래를 잘 하는 친구, 모두를 웃게 만드는 친구… 무엇보다도 힘들어하는 여자대원들을 내버려두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도와주는 남자 대원들, 못 걷겠다 싶을 정도로 아파 보이는데도 포기하지 않는 여자대원들 한 명 한 명이 바로 우리 팀을 정신적으로 탄탄하게 받쳐주는 기둥이었다.

대장정 초반의 나는 집에 가서 에어컨을 틀고 침대에 누워 있고 싶고, 편안하게 샤워를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걸 맘껏 사서 먹고 싶고, 규칙과 통제가 아닌 자유를 누리고 싶고, 핸드폰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텐트 안에 나란히 누워 수다를 떨다가 잠드는 게 더 좋고, 비누 하나와 샤워기를 나눠 쓰면서도 함께하는 샤워 시간이 더 즐겁고, 타는 듯한 갈증 끝에 마시는 주스 한 모금이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이 맛있고, 물만 보이면 달려들어 아무 생각 없이 온 몸에 끼얹을 수 있는 지금, 매일 만나 다 같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자유로우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 시간이 안 끝났으면 하고 바라게 됐을 때, 끙끙대며 30분이 넘게 걸려야 완성되던 텐트를 노래까지 부르며 8분이면 다 칠 수 있게 됐을 때, ‘출발 5분 전’을 외치는 요원님들과 정이 들었을 때, 각 군별로 군가 하나씩은 따라 부를 수 있게 됐을 때, 끝은 어느덧 다가오고 있었다.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마지막 날, 임진각을 앞두고 선두에 선 우리 팀은 걸으면서 한 명씩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외치는 시간을 가졌다. 요원님들의 말투를 따라하며 진행을 주도한 팀원의 목소리에도, 각자 고마웠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소리 높여 외치는 팀원들의 목소리에도 그간의 여정이 다 녹아있는 듯했다. 나는 눈물 흘리면서도 끝까지 버텨낸 여자대원들에 대한 존경스러운 마음과, 늘 불평도 없이 궂은 일을 도맡아 해주며 여자대원들을 끌어준 남자대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이제 도전팀의 맏언니라 불리며 지내왔던 15박 16일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시간이었다.

눈 뜨자마자 세수도 못한 얼굴로 아침 인사를 하고, 함께 노래와 체조를 하고, 가방을 들어주고 밀어주고 끌어주며, 혼자가 아닌 ‘하나’로서 이겨내던 하루하루. 아이스크림 하나에 웃고, 부모님 생각에, 물집의 고통에, 서러움에, 기쁨에, 벅찬 감동에 눈물 흘린 날들. 서로가 서로의 눈이 되고 손이 되고 힘이 되고, 서로의 목소리가 MP3가 되던 길 위. 콜라 한 캔을 29명이 나눠 먹던 의리.

다리의 탄 자국은 언젠가 다 없어지겠지만, 이 끈끈하고도 뜨거웠던 2016년의 여름은 모두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곁에서 꽃처럼 향기를 풍길 것이고, 우리가 내디딜 다음 발걸음에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이 눈부신 자부심을 간직하길 바라며, 길 위에서 얻은‘절절포’정신을 잊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를. 그리고 다시 만날 날까지 행운이 있기를.

행사를 준비하고 운영하느라 고생하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내년에 도전할 또 다른 젊음들에게는 응원을 전하고 싶다.

DMZ 평화통일대장정, 고마웠어. 이제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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