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목사의 산티아고 통신④]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 오늘도 걷는다. 아이폰3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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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 까미노 산티아고 네째 날, Pentecost le Reine까지 23킬로, 약 7시간 반이 걸렸다. 중간에 약 900m의 산을 넘는다. 오늘은 바람이 무척 세게 분다. 주위 산에 풍력 바람개비 수십 개가 있는 것을 보니 본래 바람이 센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산 아이폰3을 아직도 갖고 다닌다. 99센트에 산 클래식 곡 천 개가 들어가 있는 프로그램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폰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아침 길에 바흐의 곡을 한두 시간 듣는데 이게 가끔 초기 화면이 수십 배로 확대되면서 방전되어 새로 충전할 때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끌 수도 없다. 그래서 오늘은 끝날 때까지, 평소에는 길기에 듣지 않는 천지창조 오라토리오도 듣고 베토벤 교향곡도 몇 개를 들었다. 바람 부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잊기에 좋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순례 길은 조개껍데기와 노란색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완전하지 않아 하루에 한두 번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숲속에서 길이 낙엽으로 덮여, 헤맨 적도 있고 양쪽 모두에 길이 나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두 길이 결국은 다 같은 목적지로 이끈다. 며칠 지나다 보니 요령이 생긴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앞의 세 복음서 저자들이 말하는바 예수께서 행한 여러 가지 기적을 기적이라는 단어로 말하지 않고 ‘세메이온’ 곧 표지, 표식으로 번역되는 단어로 바꿔 표현했다. 우리말 성서는 이를 ‘이적’이라고 번역하여 본래의 저자 의도를 감춰버렸다. 읽는 사람이 ‘기적’과 ‘이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의도적인 오역이라고 본다.15492210_10207927878091568_5795456792264649708_n

왜 예수의 기적을 ‘표지’라고 말할까? 왜냐하면, 신자들이 소위 말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에 매이기 때문이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가나 사건’은 기적이나 이적이 아니다. ‘표지’이다. 예수께로 인도되는 단지 ‘표식’일 따름이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없다는 잔치의 흥, 곧 진정성이 끝났다는 말이다. 곧 유대교가 그랬는데 예수가 다시 이를 새로운 흥으로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한참을 걸어가다 조개 표지판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러다가 보이면 안심이 된다. 로마 시대는 물론 고대 중세 최근 지도가 만들어질 때까지 길의 표지판은 초행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숲속에서 잘못 갔다가는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다. 잘못을 뉘우칠 수는 있어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요한에게 있어 예수는 ‘참 자유’로 이끄는 표지였다.

15542212_10207927879651607_8572716685238997947_n-1요한복음에는 ‘나는 빵이다’는 것과 같은 ‘에고 에이미’ 선언이 일곱 번 나온다. 이는 히브리어로 야훼가 되는 선언이다. 그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분노한다. 그리고 ‘세메이온’이 일곱 번 나온다. 완전 숫자이다. 그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요한이 말하고자 한 것은 예수는 길을 인도하는 표지라는 것이다.
여기서 길은 하나만일까 아니면 여럿일까? 그건 해석에 달렸다. 지름길도 있고 돌아가는 길도 있다. 급한 사람은 지름길로 가고 여유가 있고 운치를 보기 원하는 사람은 돌아가는 길로 간다. 어떤 사람은 한번 갔던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 길은 여러 사람이 계속 밟으면서 생겨났다. 길이 절대는 아니다. 가끔 새롭게 길을 내는 사람도 있다.

최근 교황께서 자연 진화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이는 창조의 부정이 아니다. 신앙과 과학이 서로 반대가 아니듯이, 시와 논설은 같은 인생을 노래하지만, 표현 방식이 다르다. 진화는 오랜 과정을 겪기도 하지만, 가끔은 전연 새로운 패러다임 곧 전연 다른 차원으로 건너뛰기도 한다. 이때 작용하는 것은 ‘죠나단의 갈매기’와 같은 별종 모험을 즐기는 창조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요한에게 전연 새로운 차원의 표15578713_10207927878691583_1275356992516974100_n지였다. 미지로의 여행은 새로운 자기를 눈뜨게 한다. 본래 나는 이 까미노 길 순례는 70대쯤에 하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잘 닦여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칠레나 이란 쪽으로 가려
했는데 갑자기 오게 되었다. 준비가 없어, 여기 와서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다음 목적지를 알아보고 있다.

사실 이 까미노 길은 30년 전 우연히 미국 공항에서 당시 유명한 여자 배우가 쓴 책을 통해 안 바 있다. 누구나가 그렇듯이 일과 가정이 있는 사람이 40여일 시간을 내 순례를 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다 오늘까지 왔다.

오늘 숙소는 사람이 더 늘어 모두 12명이다. 스페인 이태리·일본 친구, 여기에 한국인 두 명이 더 왔다. 26세의 아들과 50대 후반의 어머니가 함께. 아들은 6개월간 세계를 여행 중에 어머니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실현하기 위해 여기서 만났다. 별로 등산 경험도 없다고 하는데 걱정이 된다. 첫날은 견뎠지만 분명 발이 부르트고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아들은 걱정이 없다. 힘들면 버스로 이동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친구가 우리 모두를 위해 스파게티를 요리하겠단다. 다들 맛있게 먹었다. 난 포도주로 대접했다.

아침에 짐을 보내려고 했더니 여기는 겨울 배송 서비스가 없어 택시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20유로란다.15665519_10207927879931614_2664464247746981750_n

한참을 망설이다 일단 보내고 나서 이곳에 도착해서 작은 배낭의 짐을 꺼내 합쳐버렸다. 그리곤 약간 찢어진 작은 배낭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 이것 또한, 아내가 집의 쓰레기통에 버린 것을 주워서 꿰매고 핀으로 꽂아 사용했던 것이다. 무게가 두 배가 되는데 내 상한 무릎이 견딜까 걱정이 된다.15578940_10207927879291598_4466453060650515234_n

그렇게 배낭은 버렸는데, 이곳 안내원이 우체부를 이용하면 8유로란다. 원…. 참… 배낭은 이미 버렸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길은 여러 갈래임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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