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목사의 산티아고 통신⑩] 일용할 양식을 잔뜩 짊어지고도 물질의 포로가 됐다
[아시아엔=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 까미노 산티아고 열흘째 날, 오늘은 성탄절. 1972년 신학교에 입학 이래 성탄절은 언제나 예배와 설교 등등 일종의 교회 업무를 수행하는 날이었다. 그것도 일 년에 한번 찾아오는 특별하고도 가장 바쁜 날이었다.
그런데 안식년에 맞게 어제 이브에는 함께 걷는 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하고 오늘도 계속 걷는다. 오늘은 하루쯤 쉬어야 하지만 쉴 곳이 없다. 숙소는 8시 이전에 나와야 한다.
.더욱 큰 문제는 하룻길 안에 문을 연 알베르게 숙소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순례자들이 예수 탄생 축하로 인해 잘 곳이 없는 모순이다.
어제저녁 성당 입구에 아기 예수 모형이 놓여 있는데 문은 닫혀 있다. 교황께서는 이번 성탄 메시지에서 예수가 물질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나 또한 오늘내일 먹을 양식을 잔뜩 짊어지고 물질의 포로가 되어 걷는다. 오늘 하루 안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아직 숙소는 없지만 3시간 걸어 도착한 Redcilla del Camino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가는데 성당 바로 앞에 바가 있는데 성탄절인데 열려 있다. 마을회관 역할을 한다. 어린아이도 70세 노인도 함께 어울린다. 나도 함께 어울려 맥주 한 잔을 들이켠다.
성탄절이라 겨울 숙소가 없어 28Km를 걸어 땅거미가 완전히 진 6시경 비얌비스트까지 왔다. 9시간 걸렸다.
비슷한 속도로 앞서거나 뒤서거니 걷던 아르헨티나 프레드리꼬 젊은이. 내 아들과 같은 나이, 35세. 4년 전 한번 했다는데 발바닥이 아파서 매우 힘들어하더니 내가 맥주 한잔하고 나오는데 벤치에 앉아 있다 더는 못 가겠다고 해서 작별 인사를 했다. 아예 못 볼 수도 있으니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가까운 다음 마을에 갔는데 성당 안에서 소리가 들려 들어갔더니 미사 중이다. 마을 사람들 약 백여 명이 모여 있다. 그리곤 다들 한 줄로 나가기에 성체를 베푸나 하여 나도 맨 나중 나갔더니 아래 사진에서 보는 아기 예수 인형에게 입을 맞추는 예식이었다. 입술에 맞추나 하고 입술을 내밀었더니 배꼽을 대어준다. 이번 성탄절 예배는 이것으로 대신했는데, 특이한 예식이었다.
마을을 빠져나가는데 아까 헤어진 프레디가 길가에 누워 있다. 숙소가 없단다. 그래서 걸어 걸어 결국 함께 여기까지 함께 왔다.
그런데 이곳 숙소 아줌마의 서비스가 매우 좋다. 바와 식당을 겸한 작은 집이다. 마을회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뭐든지 더 주려고 하고 우선 시원시원하다. 기회 되면 이 집에 머물기를 권한다. 난 어제 남은 마늘 토마토 재료로 수프를 만들려고 했는데 본래 부엌 시설은 없는데 식당 부엌을 쓰게 할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양념 재료를 마구 준다. 나중에는 포도주도 주고 아이스크림도 준다. 흰 포도주와 로즈메리로 만든 닭고기도 일품이다. 화끈한 서비스에 피로가 말끔히 씻긴다. 값도 싸다. 저녁 식사를 안 하면 6유로에 아침 포함이다. 최고로 싼 것 같다.
3일 전 다른 여주인이 있는 사설 알베르게는 시설도 누추하고 서비스도 안 좋았다. 들어가기 전 이미 한번 자본 프레디가 불평하는 이유가 있었다. 좋지 않았던 기억의 완전한 반전이다.
그래 아래층 식당에서 모두 기분이 좋아 떠드는데 가장 유쾌하게 웃는 50대 중반의 이탈리아인 알렉산드르의 웃음소리가 빠져 있다. 그는 이곳까지 못 오고 벨도라도에서 혼자 38유로의 펜션에 마무르고 있다. 어쩌면 그와는 헤어짐의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페북 친구를 맺었으니소식은 주고받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