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때 함성 들리는 듯…이승만의 말로 재현되나?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아부(阿附)는 남의 마음에 들려고 비위를 맞추면서 알랑거림을 말한다. 요즘처럼 아부라는 단어가 실감나는 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안종범·우병우 청와대 전 수석과 문고리 3인방이 생각난다.
아부에도 힘이 있다. 돈도 없고, 글재주도 없는 어느 선비가 벼슬을 하고 싶었다. 가진 것이라곤 시원찮은 아부 기술뿐이었다. 아부기술만 믿고 ‘한번 부딪쳐 보는 거야’하며 서울로 올라갔다. 아부 상대로 당대의 실력자요, 난초의 대가인 흥선대원군을 골랐다.
전주 이씨란 핑계를 대고는 대원군이 사는 운현궁을 드나들었다. 대원군의 난초를 두고 아부를 해 볼 생각이었는데 기회가 오면 잽싸게 서울 선비들이 먼저 아부를 하여 늘 한발 늦었다. 그래서 한발 앞서 아부를 할 계획을 세웠다. 어느 날 대원군이 화선지를 펴놓고 붓을 들어 난초를 치려는 순간, “대원이 대감, 난초가 썩 잘 되었습니다”고 얼른 너스레를 떨었다.
대원군은 아부인 줄 뻔히 알면서도 듣고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자네는 아직 붓도 가지 않았는데 잘 되었다고 하는가? 어느 곳의 뉘신가?”라고 물었다. 영걸스럽다던 대원군도 아부에 맥을 못 추고 그자에게 수령자리 하나를 주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부’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아부가 오히려 삶의 귀중한 처세술로 등장하고 있고 개인의 생존기회를 최대화하는 도구로 생각하고 있는 시대가 된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선호하고, 자신을 띄워주며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실을 원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진실만 보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 또한 기분을 상하게 하는 진실보다는 듣고 싶은 기만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카네기는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존경에 굶주려 있고, 자신의 가치를 남들이 알아주기를 몹시 갈망한다. 그 결과 자신에게 관심을 쏟고,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간단한 말이나 행동에 마음을 쉽게 내어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 시인 랄프 에머슨은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부란 자신의 비위를 다른 사람이 맞춰야 할 정도로 자기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부를 받으면 혈액 속의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져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알랑대고 살랑거리며 손바닥을 비비는 아부 테크닉이 성공의 지름길이 되는 세상은 불행한 세상이다. 특히 권력자가 아부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입으로는 꿀맛처럼 듣기 좋은 말을 내뱉지만 속으로는 무서운 음모를 감추고 있음을 가리킨다.
지도자가 달콤한 말만 믿고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아부와 칭찬은 구별되어야 한다. 진실이 통하지 않고 아부가 힘을 가진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초(楚)나라 장왕은 왕위에 오른 후로 3년 동안 국사를 돌보는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매일 환락만 쫓아다녔다.
어느 날 소종이 격양된 어조로 죽음을 무릅쓰고 왕에게 간언했다. “대왕께서는 이제 시류에 영합하고 아부나 떠는 주위의 간신배를 물리치고 국가를 다스리는 데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초나라를 중원의 패자로 우뚝 세워 주십시오!” 이 때 장왕은 만면에 희색을 띤 채 소종에게 “내 꼬박 3년을 기다려 자네같은 충신을 만났구려. 자네야말로 초나라 중흥의 진정한 희망이로다!”라고 한껏 칭찬해 주었다.
곧이어 장왕은 3년 동안 자기 주위에서 아부만을 일삼던 관원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했고, 그동안 용감하게 간언하고 국정을 잘 다스린 관원들을 등용했다. 소종에게 나라의 대임을 맡겨 생산력과 군사 훈련에 전력을 다하도록 명해 초나라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진나라를 물리치고 중원의 패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우병우, 안종범 두 수석비서관과 소위 ‘문고리 3인방’이라는 사람들을 물리치지 못해 왔다. 이들 모두가 최순실 게이트에 직간접으로 연관됐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돼서야 그들을 쳐냈다. 그들이 아부를 잘 해서일까, 아니면 무슨 약점을 잡혀서일까? 전국 대학생·교수는 물론 중학생 시위도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지금의 사태는 꼭 그 옛날 4?19혁명 때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때를 놓치면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그 당시 자유당 정권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에게 아부를 일삼던 사람들로 인해 혁명이 터졌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존경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