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지존’을 움직이는 게 진짜 ‘지혜’

손자의 병법서
손자의 병법서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혜일 것이다. 복도 다하면 타락한다 했다. 지식도 오래 되고 녹 쓸면 없어진다. 그러나 지혜는 영원히 살아 있다. 지혜란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 능력이다.

지혜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일까 아니면 어디서 배워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지혜를 많이 얻을 수 있고 언제 어디서라도 지혜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지혜는 머리 좋은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것인가? 지혜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지혜를 가르쳐 주는 곳도 없다. 다만 세상의 지식이나 다른 여러 가지 다른 내용들을 배우거나 경험하거나 체득할 때 지혜가 하나 둘씩 자신에게 쌓여가는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 전략가 손빈(孫?, 생몰연대 미상)은 병가(兵家)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이다. 손무(孫武)의 손자이고, 손무와 같이 손자(孫子)로 불린다. <손빈병법>(孫?兵法)은 바로 손빈이 지었다. 한 번은 제(濟)나라의 ‘위왕’이 여러 대신과 길을 가다 어느 산 밑에 도착했다.

위왕은 한참 산봉우리를 바라보다가 대신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가 나를 저 산봉우리에 올릴 수 있겠느냐? 너희들 가운데 그런 재주를 가진 자가 있으면 큰 상을 내리겠다.” 위왕의 말을 들은 신하들은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왕을 산봉우리로 올릴 수 있겠는가? 신하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자 위왕은 신하들 사이에 서있는 손빈을 지목하며 물었다. 손빈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임금님을 산 밑에서 산봉우리로 올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임금님이 만약 산봉우리에 계신다면 산 밑으로 내릴 수는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위왕은 ‘손빈이 아래에서 위로 오릴 수는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위에서 아래로 내릴 수 있다는 말이지?’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그 방법이 너무 궁금해서 산봉우리로 향해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왕과 신하들이 모두 산봉우리에 이르자 손빈은 임금 앞으로 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임금님!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는 이미 전하를 산봉우리로 올려놓았습니다.” 그제야 위왕은 손빈이 자신을 깨우쳐 주기 위해 지혜를 발휘한 것을 깨달았다.

지혜는 어떻게 얻는 것일까? 배움을 추구하는 한 젊은이가 어느 날 현자(賢者)에게 찾아가 물었다. “선생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현자는 답변을 주지 않았다. 젊은이는 계속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현자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다음 날, 젊은이가 다시 현자에게 찾아와 질문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현자는 답을 주지 않았다. 다음날, 젊은이가 찾아와 또 물었다. “선생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현자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강을 향해 걸어갔다. 현자는 강 속으로 걸어가며 젊은이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충분한 수심(水深)에 이르자, 현자는 갑자기 젊은이의 어깨를 잡고 그의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았다. 젊은이가 발버둥 쳤지만 현자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얼마 정도 시간이 경과된 후에 현자는 젊은이를 물속에서 꺼내줬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젊은이에게 현자가 물었다.

“이 보게 젊은이! 물속에 있었을 때 자네가 가장 바랐던 것이 뭔가?” 젊은이는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공기요! 저는 공기를 바랬습니다!” “부(富)와 쾌락, 권력, 그리고 사랑은? 그런 것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젊은이가 즉각 대답했다. “아뇨! 제가 원했던 것은 오로지 공기였습니다! 공기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현자가 대답했다. “자네가 지혜를 얻고 싶다면, 물속에서 공기를 원했던 것만큼 지혜를 갈구해야 한다네. 삶의 다른 목표들을 모두 제쳐두고서라도 지혜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하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내가 추구하는 유일한 것이 되어야 한다네. 그 정도의 열정으로 지혜를 구한다면, 반드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네.”

지혜를 구하려면 생사도 불고(不顧)하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지 않으면 지혜는 얻을 수 없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은 설산(雪山)에 들어가 6년간 죽음도 불사하는 수행을 하셨다. 그리고 원불교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도 온 몸에 적(?)이 들고 식음도 잊은 대적공(大積功) 끝에 우주의 진리를 대각(大覺)했다.

지혜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요지(要旨)만 한번 살펴보자.

첫째, 정신수양(精神修養).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심(分別心)과 주착심(住着心)이 없는 경지를 이른다. 그리고 수양은 안으로 분별심과 주착심을 없이 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는 수행법이다.

둘째, 사리연구(事理硏究).

사는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를 말한다. 그리고 이는 천조(天造)의 대소유무(大小有無)를 말한다. 그리고 대(大)라 함은 우주만유의 본체를, 소는 만상(萬象)이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말한다.

또한 유무(有無)라 함은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순환(四時循環)과 풍·운·우·로·상·설(風雲雨露霜雪)과 만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흥망성쇠(興亡盛衰)의 변하는 모양을 말한다. 연구는 사리를 연마하고 궁구하는 것이다.

셋째, 작업취사(作業取捨).

작업이라 함은 무슨 일이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취사는 정의는 취(取)하고 불의(不義)는 버리는 것이다.

이상의 세가지에 충실하면 나름대로 지혜의 근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