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친절의 미학’, 들어보셨나요?
친절(親切)이란 “대하는 태도가 매우 친근하고 다정함” 또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친절은 보이지 않는 상품이다. 몇년 전 미국의 한 보고서에서 재미있는 설문결과를 본 적이 있다. 당시 미국 내 정계, 학계, 경제계, 문화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최고 위치에 오른 사람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당신이 오늘날 그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하는 질문과 함께 △학벌 △배경 △재산 △행운 등 다양한 항목이 제시되었다. 설문결과는 엉뚱하게도 대상의 90% 이상이 매너를 으뜸으로 꼽았다.
“나는 별로 잘난 것도, 가진 것도 없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타인에게 늘 친절과 배려를 해왔던 것 갔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매너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항상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 주웠지요.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든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고 듣고 하는 이 ‘친절’이란 단어는 결코 그 깊이가 얕거나 가치가 낮은 것이 아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러므로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너 또한 남을 그렇게 대접하라. 그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다.”(마태복음 7장12절) 내가 타인에게 대접받고 존중 받으려면 나 또한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무재의 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이 있다. 재물 없이도 베풀 수 있는 게 일곱 가지가 있다는 말이다. △남을 향해 밝게 미소 지어 주는 것도 베푸는 것이요 △마음을 나눠주는 것 △몸을 던져 베푸는 것 △따뜻한 말과 격려의 말을 해주는 것 △내가 앉았던 자리를 내주는 것 △누구를 위해 무엇인가 베풀어 줄 것이 없나 살피는 것 이 모두가 베품(布施)이다. 이렇게 깊은 의미가 배어 있는 친절은 결코 상대에게 그냥 주고 마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는 감동을 선사하고 자신에게는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필자는 1970년대 후반 권투흥행사로 일할 때, 일본을 자주 다녔다. 그때 만난 친절한 일본의 운전기사가 생각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 있는 ‘닛꼬’(日光)에 갔을 때의 일이다. 묘소를 둘러보고 기념품점에 들러 목검을 몇개 샀다. 귀국해서 도움 준 분들에게 드릴 선물이었다.
목검을 들고 한참을 내려오다가 신발 끈이 풀어져 목검을 내려놓고 신발 끈을 고쳐 맸다. 그리고 무심히 그냥 내려갔다. 기차역에 다다라 무언가 허전하여 찾아보니 목검이 없다. 부리나케 택시를 불러 타고 ‘닛꼬’ 입구에 내려 잃어버린 장소로 달려가려 하니 택시기사가 나를 따라왔다. 함께 가겠다는 것이다. 말도 서툴고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함께 달려갔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자리에 목검이 고스란히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물건을 함께 찾은 운전기사는 “참 잘 되었습니다” 하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다시 기차역까지 돌아온 택시기사는 요금도 더 요구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나는 일본여행에서 만났던 이 택시기사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만큼 일본 홍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택시기사가 나에게 베풀어준 친절이 아마 일본에 대한 몇배의 호의로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랫동안 일본 측 프로모터와 비즈니스를 하면서 돈을 벌어온 필자는 일본이라고 하면 세 단어가 생각난다. ‘정직’ ‘청결’ ‘친절’이다. 평소 생활이 청결하니 정직하고 친절한 것이다. 청결은 남에 대한 배려다. 친절의 표현이 청결이 아닐까 싶다. 청결하지 않는 음식점이 친절할 순 없다. 하다못해 길거리 음식점에도 청결하고 친절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렇게 청결은 형식이고, 정직은 내용이다. 우리 속담에도 “친절해서 뺨맞는 법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어느 나라 어디를 가든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인사를 하되 이왕이면 우리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 친절이 몸에 배면 정말로 좋은 일들이 늘 생긴다.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인사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그러니 주는 만큼 받게 되는 바로 이치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지금은 필자가 다리가 부실해 여행을 다니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비교적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다. 그 숱한 여행에서 본 일류국가의 특징은 이런 것 같다.
- 화장실이 깨끗하다.
-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다.
- 인물을 기리는 동상과 기념관이 많다.
- 사람들이 친절하면서도 절도가 있다.
- 옷차림이 간소하다.
- 일을 하는 모습이 즐겁게 보인다.
- 경찰에 대드는 사람이 없다. 경찰도 친절하다.
선진국일수록 사람들의 목소리가 낮다. 식당에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조용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하는 것이다.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미국에서 한국식으로 고함을 치다가는 총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에게 존대 받길 원한다. 상대방한테 존대 받는 방법은 곧 내가 먼저 상대방을 존대해 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대할 때 화(和)와 유(柔)로 대하면 능히 강(剛)을 이길 수 있다. 정말로 천하무적이 되는 것이다. ‘화’와 ‘유’ 이것이 진정한 ‘친절 미학’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