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가을이라 그런가 낙엽 지는 거리를 걷다가 문득 슬픔이 밀려온다.

2016년 11월의 가을 하늘이 유난히 가을답지 못한 것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를 너무나 슬프게 하고 못마땅하게 하는 데에서 오는 심리적 영향이 크다.

지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설마 설마 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온통 거짓으로 얼룩져 마치 양파와 같이 까도 까도 계속 터져 나오는 배신감 때문일 거다.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의 중심에 있던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 박관천 행정관은 청와대의 권력지형에 대하여 “최순실씨가 1위이고 정윤회씨가 2위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때는 이 말을 믿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말의 진실성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대통령,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의 억울한 옥살이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대통령의 마늘주사, 태반주사로 얼룩진 이 부조리한 시간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304명의 채 피어나지도 않은 아이들과 시민들이 세월호에 갇혀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수장되고 있는 데 나라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7시간 동안이나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기에 아직도 그 행방을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 너무나 우리를 슬프게 한다. 굿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성형수술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개성공단을 단칼에 폐쇄하고 철수시킬 때, 그 때문에 사업체를 잃고, 투자비를 몽땅 날린 중소기업들의 피맺힌 절규가 계속되고 있는데 대통령은 한 아낙네가 써준 원고를 읽는 것으로 세계 정상들을 만나고 나라 망신을 시키고 있는 것이 우리를 여간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때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이라 했다. 그 말을 믿고 나도 박근혜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다. 그런데 이제 보니 거짓말과 시치미 떼기,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불통의 대통령이다. 어찌 국민들이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국정은 최순실에게 맡기고 최씨 집안의 민원해결사 노릇을 자처하며 기업들의 돈을 뜯고 청탁과 이권 밀어주는 데에 여념이 없던 그 대통령, 최순실이 시키는 것이라면 전쟁도 마다 않고 부정한 행위도 거절하지 못할 정도의 그 비정상의 혼이 우주의 기운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국정농단의 벌거벗은 실체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성난 촛불이 삼천리강산에 넘실대고 있는 데도 대통령 자리를 놓치 않으려 안간 힘 쓰는 모습이 우리를 한없이 슬프게 한다.

믿던 사람들마저 하나 둘 등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호위무사들의 사표와 함께 국무위원들도 줄줄이 사의를 표하면 결국 내려올 수밖에 없는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버티면 된다는 대통령의 입을 자처하는 여우같은 한 변호사의 사상누각 발언은 또 우리를 슬프게 하고 분노케 한다.

“돈도 실력이니 니 부모를 원망하라”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막말, ‘박태환·김연아 불이익’ 그리고 재벌들이 최순실 모녀에게 지불한 엄청난 돈 돈 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이뿐일까?

경제는 파탄 나고, 헬조선을 부르짖는 청년들, 자살률 세계 1위, 커져가는 빈부격차, 굳어지는 금수저,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갑질과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는 오만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지금 온 나라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삼포(三抛) 오포세대를 넘어 이제 엔(N)포 세대가 우리를 또 슬프게 한다. 돈 많은 부모한테서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자식들은 부모 재산을 물려받는다지만 더 많은 부모들은 흙수저도 물려줄 형편이 어려운 게 경제선진국 대한민국 현실 아닌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삼포세대라고 하는 것은 이제 고전에 속한다. 마침내는 학업, 취업, 정규직, 승진, 주택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이른바 엔(N)포 세대! 지금 수많은 젊은이들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의로운 일에 굴곡과 고난이 많은 역사는 많을수록 만고(萬古)에 영예로운 것이다. 그러나 옳지 못하게 환락에 젖었던 역사는 만고에 부끄러움만 남는다.

신라의 이차돈(異次頓)은 부처님의 법음을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스스로 몸을 바쳐 이적(異蹟)으로 죄업중생을 제도했다. 공중을 위하여는 죽는 것도 이같이 아끼지 아니하는 것이 지도자와 공직자의 자세다.

교목세신(喬木世臣)이라는 말이 있다. 세신이란 곧 대대로 나라를 받들어 나라와 운명을 같이할 중한 신하를 말한다. 나라가 망하면 나도 없어지고, 나라가 흥하면 나도 흥하는 것으로 알고 생명도 바칠 만한 혈심의 인물이 다름 아닌 나라의 지도자이고 교목세신이다.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세를 믿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모든 허물을 대통령에게 돌리고 저 혼자만 빠져나오려고 허우적댄다. 이들 희대의 간신배들의 배신이 또 우리를 슬프게 한다. 비록 대통령의 허물이 태산처럼 크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뒤집어쓰고 목을 매는 의리의 돌쇠 같은 자들이 하나만 있어도 우리를 이렇게 슬프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토요일 대통령 하야 궐기대회의 시위인원이 전국적으로 200만이 훨씬 넘었다. 국민들 함성을 이제는 더 거역하지 말고 대통령 직에서 즉각 내려오시라. 더 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