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대장부의 다섯 조건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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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이 있다. 옛날 한 승려가 마조도일선사(馬祖道一禪師, 709~788)에게 어떤 것이 도인가를 물었을 때 “평상심이 도”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세상 사람은 도라고 하면 특별한 것 또는 보통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기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란 바로 범부(凡夫)가 일상 생활하는 그 마음을 여의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번뇌가 없고, 일상생활의 하나하나에 몰두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도다. 결국 ‘평상심시도’는 도의 궁극적인 경지와 수행의 과정을 이 평상심에 두고 있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있음(有)과 없음(無), 생함(生)과 멸함(滅) 등 상대적인 어떤 두 극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친 상대적인 견해를 말하는 두 변(兩邊)은 선악(善惡), 유무(有無)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고(苦)와 낙(樂)도 있다.

많은 수행자들이 세간의 향락을 버릴 줄만 알고 있다. 그러나 고행하는 괴로움도 병이다. 그걸 버리지 못하면 해탈(解脫)을 얻지 못한다. 참으로 해탈을 하려면 고(苦)와 낙(樂)을 다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것, 그것이 중도다.

중생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바로 깨쳐서 해탈을 얻기 전에는 무엇을 대하든지 그것은 고가 아니면 낙이고, 낙이 아니면 고라서 항상 양변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러니까 ‘양 극단에 집착하지도 않고 중간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중도다.

이렇게 두 극단에도 집착하지 않고, 가운데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격식을 벗어난 대장부(大丈夫)의 행동이다. 대장부는 비록 궁한 집에서 살며 형편없는 음식이나마 끼니를 잇지 못한다 하더라도 늘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궁핍함을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대장부는 이렇게 세상을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혹 믿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등을 돌리고 떠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그를 이해하고 용서하면 우리는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야박하게 거절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도 언제 도움을 청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평상심으로 살아가면 바로 그것이 대장부의 마음인 것이다.

맹자의 대장부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부동심(不動心)이다.

대장부는 유혹 앞에서 타협하지 않는다. 공자는 나이 40에 ‘부동심’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 어떠한 풍파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둘째, 선의후리(先義後利)다.

이익에 앞서서 옳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실리가 우선인가, 인간으로서의 의리가 우선인가에 대해 맹자는 단연코 “의를 행하면 이(利)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했다.

셋째, 호연지기(浩然之氣)다.

호연지기란 지극히 크고 강한 기운을 말한다. 그래서 맹자는 “잘못 기르면 해악을 미칠 수 있으니 굽은 마음이 아닌 곧음으로만 길러야 한다”고 했다.

넷째,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대장부는 좋은 것을 더불어 즐긴다. 대장부는 “좋은 것이 있으면 나 혼자 즐기지 아니하고, 나를 따르는 조직원들과 함께 즐기라”는 의미다.

다섯째, 불인지심(不忍之心)이다.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선한 마음을 말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에는 ‘인·의·예·지’가 있다. 이 네 가지를 닦으면 대장부가 될 수 있다.

맹자는 대장부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넓은 곳에 거하고, 바른 자리에 서며, 큰 도를 행한다. 뜻을 얻으면 사람들과 함께하고,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리라. 부귀를 가졌어도 부패하지 않고, 가난하고 힘들어도 포부를 버리지 않고, 권위와 무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라야 대장부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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