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8·15 경축사, 정유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 원망해” 그리고 김재수의 ‘흙수저 타령’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필자가 젊었을 때만 해도 인간을 수저에 비유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 ‘수저계급론’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인간의 계급을 수저에 비유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지? 현재 우리 국민의 계급을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무수저로 나누는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의 중심인물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SNS에 올린 글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수저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논란이 된 정유라씨는 2014년 12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어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의 욕하기 바쁘니까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라고 조롱했다.
또 “니까짓 더러운 것들이랑 말 섞기 싫어서 그래” “주제를 알렴. 난 니네한테 관심도 없는데” 등 비속어를 써가며 자신을 주변 사람들과 ‘다른 계급’으로 인식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정유라는 이화여대 수시모집 체육특기자전형에 합격, 주변에서 특혜 의혹에 관한 입소문이 퍼지자 SNS에 이같은 글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글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옮겨지며 논란이 됐습니다. “돈도 실력”이라는 언급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공분(公憤)을 샀다. “능력 없는 부모를 원망하라”는 내용 역시 흙수저 논란을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다.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력으로 수저의 등급이 결정된다는 수저계급론이야말로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무수저로 만든 ‘인간 등급표’가 아니고 무엇인가? 마치 육질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개돼지도 아니고,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이 땅에 자조 섞인 수저계급론이 횡행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누구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도 작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조차 힘든 세상이다. 휴학을 몇번씩 하며 문을 두드려도 직장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서울 노량진 고시촌에는 공무원이 되겠다는 ‘공시족(公試族)’이 우글거린다. 공시 3수, 4수는 예사라고 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들에게 코웃음일 뿐이다. 신분상승의 사다리는 소수의 특권자들에게나 허용된 지 오래다. 흙수저들은 ‘지옥같은 한국’에서 금수저들이 자본과 권력을 독점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의 젊은이가 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면 ‘절망국가’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라를 이끈다는 사람들은 흙수저의 아픔을 보듬기는커녕 분통터지게 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라고 촉구했다.
죽기살기로 알바를 뛰어도 등록금 융자금조차 감당 못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대통령의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게 들릴 것이다. 누가 헬조선을 만들었는가? 권력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긴 전·현직 집권층, 반칙과 특혜로 남의 자리를 빼앗은 1%도 안 되는 소수인간들이 헬조선을 만든 주역 아니고 누구인가?
대통령은 좌절하는 젊은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뒤틀린 ‘게임의 규칙’을 바로잡겠다고 했어야 한다. 일자리를 늘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겠다고 하는 게 우선이었어야 마땅치 않았을까? 청년 10명 중 3.4명이 실업자(현대경제연구원)인 현실에서 대통령의 ‘질책’은 뜬금없게 들릴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임명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흙수저 타령’으로 진짜 흙수저를 농락했다. 그는 명문 경북고와 경북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 행정고시 21회 출신이다.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장관에 임명된 다음 날, 그는 모교인 경북대 동문회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모함, 음해, 정치적 공격이 있었다. 지방학교를 나온 흙수저라고 무시한 게 분명하다.” ‘황제전세’ ‘특혜대출’ 의혹에 휩싸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니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경북대를 ‘흙수저 대학’이라고 한 것을 보고 동문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 아닌가?
더 큰 문제는 그의 인식이다. 지방 명문대를 나와 고시에 합격하고 장관까지 된 사람이 흙수저 타령을 한다는 게 가당치도 않다. 설사 정치적으로 곤궁해서 그렇다 해도 너무 속이 보인다. 이참에 김재수 장관은 흙수저라고 자조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지 깊이 살펴보면 어떨까?
유행병처럼 떠도는 ‘헬조선’ 그리고 수저논란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계급구조는 고착화돼 있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대오각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권력도 돈도 다른 사람의 희생이 있었기에 쥐어진 것 아닌가? 그 희생자들에게 나눠주진 못할망정 그들의 몫까지 빼앗으려고 해서야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지금 흙수저들의 분노가 용암처럼 들끓어 폭발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을 그들 금수저들만 모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라는 ‘최순실’이라는 여인이 뭐라고 이처럼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나라의 품격을 이다지도 수치스럽게 만드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지금 박대통령이 개헌을 들고 나올 때가 아니다. 그 시간에 최순실 모녀의 부정과 ‘미르재단’ ‘K 스포츠재단’의 의혹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워 다시는 이 땅에 ‘수저계급론’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개천에서도 용이 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