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일베’. 트럼프의 ‘지네들’
[아시아엔=윤석희 <아시아엔> 미국 특파원]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과의 관계를 인정하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뉴욕타임스>와 <FOX 뉴스>등에 보도됐다. 아시아 특히 한국에 관심 갖는 미국의 여론 주도자들은 ‘최순실 게이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명예 실추는 민주주의의 후퇴에 덤으로 주어졌다.
<뉴욕타임스>의 최상훈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최순실, 정유라, 이화여대 논란 등을 개략적으로 짚어가며 경제위기와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개헌 논의를 함께 보도했다. 최저 지지율 역시 보도되었다.
최상훈 기자는 청와대를 둘러싼 복잡한 루머들을 미국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최순실이 라스푸틴류의 인물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고 소개했다.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종지부를 찍은 요승 외에는 무속신앙과 정치권력이 결탁하는 현상을 미주 독자들에게 비교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례가 아니었나 싶다. ‘독재자의 딸’로 박근혜 대통령이 <타임> 표지를 장식한 이후 다시 한번 한국 민주주의의 전근대성을 증명하는 사례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발 스캔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과거와 다르다. 트럼프의 효과로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수그러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사태를 브렉시트, 독일의 페기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 유럽의 우경화와 같은 움직임으로 보는 시선 역시 늘어나고 있다.
분단 현실로 왜곡되고 유교적 가치관이 유효한 한국의 정치 현황과 안보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서구의 정치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서를 막론하고 우경화의 배경에는 외부의 변화에 대한 불안감과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우익도 고성장 시대의 박정희, 전두환에 대한 경제적 향수와 심화하는 국제 경쟁에서 대기업이 없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이용하여 재벌 위주 경제정책을 꾸려 왔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의 정치권과 재계는 처참하게 부패했다.
특검이 확실시된 지금 2017년 대선과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열망은 강렬하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 미군에 기댄 안보, 저성장 하는 세계 경제, 경쟁력을 잃는 기간산업 등을 볼 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자연히 야권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큰 오산이다.
트럼프식 파시즘은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역시 유효하다. 새누리당의 지지세력은 미국 공화당의 지지세력과 마찬가지로 저소득층, 저교육층 시민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박정희의 향수에서 깨어나 박근혜 정권을 직시한 이들은 극심한 정치 불신과 혐오에 시달리고 있다.
8chan과 Reddit 등지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지네들’과 박근혜를 지지했던 ‘일베’ 등 인터넷 세력은 비슷한 점이 많다. 익명의 공간에서 이들은 루머를 확대 재생산하고 미디어를 재가공하여 확산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대선과 같은 국민적 관심이 쏟아지는 사안에서 이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무시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후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