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⑩] 3당합당 민자당, 민정당보다 지지율 큰 폭 하락 ‘왜’?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한국의 정치발전은?계파의 이합집산에 따라 지체된다. 이는 한국정치가 진작 권위주의시대를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당 엘리트들과 권력층 내부에 아직도 그 잔재가 작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아직도 권위주의 요소가 작용한다는 사실은 정당이 누굴 위해 뭘 대표하는지 답할 수 없게 만든다. 정치적 권위주의와 대표성의 위기는 그래서 서로 연관된다. 한국정치의 한계를 이해하는 데 이는 새삼 중요하다.

정치 환경이 권위주의를 벗어난 지 이미 오래란 점은 직업정치권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치권 스스로 낡고 빛바랜 틀을 버리지 못하는 건 뿌리 깊은 계파유지 욕구 때문이다. 그들은?계파정치패턴을 정당정치패턴으로 바꾸기 위해 새로운 행동방향을 제시해야 할 주체임에 틀림없다. 이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건 유권자들의 정치안정심리를 담보로 한 고의적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그 같은 행태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그것은 대권욕이었다. 대권을 눈앞에 둔 각 계파수장의 개인적 야망과 중간보스들에 대한 수장의 정치적 보상의무가 맞물려 나타나는 불가항력의 작동이라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자신을 추종하는 중간보스와 가시적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계파 정치인들에 대한 지분 보장은 수장들에게 부담스런 요인이다. 이 요인은 한국 정치현장에서 수장의 권위주의적 정치행태를 좀체 사라지기 어렵게 만든다.

자유민주당 창당 당시 모습
1990년 민주자유당 창당 당시 모습. 왼쪽부터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사진=티스토리>

여야 막론하고 이 점이 확대된 참여를 제도화하지 못하거나 소수 당권자에 의해 당을 중앙집권적으로 조직·운영하게 만드는 직접적 배경이 된다. 결국 참여 확대의 정치적 기운을 정당으로 통합시키기 위해 당 조직을 민주적으로 제도화시켜야 한다는 당위론은 적어도 한국?계파정치 현장에서만큼은 의미가 없다.

이러한 한계는 운동권을 제도권으로 흡수하는 데에도 마이너스 효과를 일으킨다. 그들이 당시 과연 제도정치권으로 흡수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제도권 파벌들은 관대하지 않았다. 재야의 제도권 진입을 둘러싼 난관으로 ‘운동’과 ‘정치’를 혼동하는 정체성 위기나 현실감각 부족 등 내부 한계를 꼽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권 스스로가 이들의 진입이나 정치적 입지점을 허용하려 들지 않는 데 있었다.

기존의 양당 체계가 시민사회를 대표하지도 못하고 유권자들 역시 여야 대결구도 밖에서 심각한 정치적 무관심이나 반대심리에 젖어 있음은 과거의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1991년에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노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잘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54.2%였고 민자당 지지율은 불과 16.8%로 나타났다.

민자당에 대한 이 같은 지지율은 같은 정치지표를 조사한 이래 최저였고 3당 합당 이전 민정당 지지율 34.9%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었다. 당시 그 밖의 정당 지지율은 평민당이 18.5%, 민주당이 11.2%, 민중당이 2.6%였다. 그러나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38.2%였고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은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다른 조사에서도‘지지 정당이 없다’는 반응은 36.2%였다. 평민당은 여느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지지율의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아 그들의 세(勢)가 고정적임을 알 수 있다. 이같은 결과는 14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대한 고정적 지지층의 정치심리를 잘 반영한다. 대표성의 위기를 반영하는 이 같은 심각성은 ‘가장 믿을 수 없는’ 직업집단이 바로 ‘정치인 집단’이라고 집약한 1990년 한 통계에서도 읽을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그 결과를 이렇게 압축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직종의 사람은 정치인이다. (복수응답) 응답자의 70%가 싫은 사람으로 정치인을 가장 먼저 꼽았다. 대기업가의 경우는 41%이며, 경찰은 29%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으로 보아서 정치인, 대기업인, 경찰 순으로 싫어하고 있다. 그러나 복수응답의 성향을 볼 때, 대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경찰에 비해서 2차적이다.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판단은 압도적이다. 군인은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적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적다. 회사원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회사원을 좋다고 한 비율은 중간정도이지만 싫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전무하다. 중소기업가에 대한 선호도 회사원과 대동소이하다. 농민들과 근로자들을 싫어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요컨대 정치인, 경찰, 대기업가들 이외에 적극적으로 기피당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 ‘21세기를 향한 국민의식성향 조사연구’1990)

이를 깨기 위한 가능한 정치적 대안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여권대로 재집권을 위해 노력했고 야권은 ‘정치적 도덕성’을 내걸면서 여권의 재집권 의도에 맞선다. 민주당을 제외한 야권의 소수 정당들은 정치권에서 제3의 비토 그룹 역할을 원했지만 현실적으론 약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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