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③] 한국정치를 결정하는 힘은 어디서?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교수, <패션과 권력> <문학과 정치> 저자] 한국정치를 결정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 그 기운의 실질은 뭘까. 복잡한 이론이나 난삽한 개념 대신 바로 떠오르는 답을 궁리해보자. 그건 권력을 장악하거나 장악하려는 사람들 혹은 그 집단 속에 있지 않을까. ‘정치적 힘의 원천이 국민들에게 있다’는 헌법 상식이 타당하려면 권력집단에 대한 국민(유권자)의 ‘제어력’부터 분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치권력을 몇몇 집단이 폐쇄회로 안에서 독점적으로 누리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그래서 꼼꼼히 추적할 필요가 있다. 한 번 더 묻자. 한국정치를 결정하는 지배적 힘은 어디서 우러나는 걸까. 원만한 정치를 숙성시키는 정치이론이나 이를 이끄는 ‘사상’조차 태동할 조짐이 없고 제도화 절차조차 제대로 학습해 보지 못한 현실 속에서 형체 없는 권력을 내뱉는 자원이 있다면 그건 뭘까. 게다가 그 주체는 또 누굴까. 이 같은 질문들은 물론 새삼스럽지 않다.
널리 알려진 대로 해방 후 분단의 고착화는 한국정치를 지속적인 폭력과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위기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게 만든다. 여기서 생겨난 면역의 패러독스는 정치적 무관심과 소외, 극도의 환멸과 허무주의 속에 모두를 가둔다. 이른바 ‘민주화’란 이름아래 추진된 정치변화는 그 사이 대중들에게 정치적 믿음과 기대를 스스로 저버리도록 강요하고 실망의 열매는 대신 직업정치인들의 반사이익으로 알뜰하게 활용된 것 또한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대중의 정치적 불만은 곧바로 시민혁명의 잠재력을 키워나가기 충분했다. 그러나 해방 후 유권자들은 혁명적 변혁의 직접적 담지주체로 나서기보다 ‘표’를 통한 거부와 ‘합리적 선택’을 반복한다. 정치적 반항과 지속적 저항의 맥이 단절된 건 물론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위기와 폭력으로 헌정은 종종 중단되고 새로운 대체세력이 출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산층과 시민들은 일단 크게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는 분노로만 그쳤다. 분노가 결코 시민혁명에 불을 붙이거나 자발적 불복종으로 연결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해방 후 시민들은 대부분 ‘정치적 침묵’의 주체들이었다. 현대사의 구비 구비가 어슷비슷 파도쳐도 과거의 교훈을 쉽사리 잊고 또 다시 ‘억제된 분노’와 ‘준비된 침묵’ 속에서 정국 변화를 주시하는 질서정연한 ‘관객’으로 그쳤던 셈이다.
한국정치와 대중의 이 같은 침묵은 어떤 관계를 가질까? 대중의 정치적 침묵도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힘의 원천일 수 있을까? 그들은 과연 헌법상의 주권자 기능을 착오 없이 수행하고 있는가? 지나간 얘기지만 새삼스레 물어보자. 헌정 중단을 막거나 그에 정면 대항하지도 못한 채 변화하는 정국과 개정 헌법을 사후 승인해 주면서 몇 년에 한 번 씩 돌아오는 선거에서 헌정중단에 책임 있는 후보를 선출하는 것만으로 정치의 힘은 새롭게 충전할 수 있었다는 얘긴가?
바꾸어 말해보자. 한국 유권자들은 혁명에 앞장서야 하는가, 아니면 침묵의 대열 안에서 후보 선택을 위한 냉정한 사고만 되풀이해야 하는가? 이에 답하려면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유권자들 모두는 자신의 침묵을 변명하거나 실천적 대안을 이제 고민해야만 한다. 게다가 침묵의 실체가 맹목적 복종인지, 아니면 순응이나 동조 혹은 극단적 환멸에서 비롯된 적극적 무관심인지까지 짚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제껏 한국 정치학은 이들 물음에 정확히 답하지 못했다. 아니, 어느 한 가지에 대해서도 흔쾌한 답변이나 실마리조차 제공하지 못했다. 왜 한국의 정치현실과 한국 정치학은 따로 존재하는 걸까? 정치학이 정치현실을 이끌만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까? 정치학자들이 직업정치인들과 담 쌓고 직업정치인들 또한 지식인들을 종종 무시하는 풍토는 왜 생겨났을까? 정치이론이 정치현실을 이끌지 못하는 건 학문이 너무 앞선 탓일까, 아니면 일반대중과 직업정치인들이 뒤처져 있기 때문인가? 정치현실은 정치이론으로 치유될 수 있는가? 그런 가능성을 예측할 만한 이론은 우리에게 있는가? 이 같은 포괄적 의문들에 우리는 답해야 한다.
무엇이 한국정치를 결정하는가? 적어도 그것은 이론이나 사상, 학문이 아니다. 유권자 일반의 헌법적 주권도 아니다. 교과서적 함의가 한국의 정치현실을 해부하는 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정치는 인간이 결정한다. ‘정치적 인간’들이 좌우한다. ‘정치적 인간’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만드는 계파가 한국정치를 결정한다. 권력욕이란 개인의 동기를 깊이 숨기고 가능한 한 그럴듯한 핑계로 공적인 목적을 만들어 자기의 행위가 공익만을 위한 것인 양, 덧씌우고 합리화하는‘정치적 인간’의 변신술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선 한국정치를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정치를 결정하는 힘의 원천이 ‘정치적 인간’들이 은폐하고 있는 권력추구와 대권 획득을 위한 정치욕망에서 잉태되기 때문이다. 그 욕망의 씨앗은 곧 ‘파벌 모체’의 ‘계파조직’이란 자궁 속에서 양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