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⑧] 1992 총선 민자당 김영삼의 고전과 정주영의 국민당 약진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교수] 정통 야당인 신민당이 평민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대체된 신 야권은 신민주공화당과 더불어 새로운 정국을 출현시킨다. 4개의 정당이 각자 비슷한 세력판도를 차지하자 종래의 양당체제는 다당제로 전환, 협상 위주의 정당정치가 시작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 같은 정치상황의 급격한 변화는 여소야대의 의석분포와 행정부 기능의 위축을 불러온다.
이는 한국에서도 다수의 정치적 반대세력과 그 합법적 제도화 절차가 자리 잡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기도 했다. 여소야대 정국운용에 따른 면역체가 전혀 마련되지 않았던 전통야당의 고질적 병폐(일방독주와 극한대립 등)가 상존했다는 점에서 약점을 안는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4개의 다수 정당체계가 자리 잡혔다 해도 선거는 철저한 인물중심주의와 분파주의에서 추진된 것이었고 정당 간 경쟁은 결국 골 깊은 지역감정만 재확인시켜 준 꼴이 되고 만다.
다수 정당체계의 운용기회란 한국정당사에서 드문 일이었고 민주화 추진을 위해 고무적인 계기였다. 그것은 마치 내각책임제의 순기능을 기대할만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총선 후 20개월 만에 깨진다.
1990년 1월 22일,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과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는 3당 합당을 선언한다. 왜 합당했는지 명분이나 이유는 그만 두더라도 이 선언은 기왕의 ‘대표성의 위기’?위에 또 다른 유형의 ‘정통성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합당 합의와 단행이 어디까지나 ‘권력의 자의(恣意)’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 후 정국운영이 지극히 파행적이고 이러한 병폐가 다수정당체계의 순기능 발휘에 저해요인이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전혀 도출될 겨를도 없이 다수 정당체계의 역기능이 합당의 볼모로 저당 잡히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어렵게 조성된 여소야대의 복수 정당구조는 이로써 ‘거여야소’라는 기형적 양당체제로 다시 바뀐다.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은 당직자 인선, 지구당 개편, 합당대회를 거쳐 원내 의석 218석을 가진 거대여당이 되고 종래 제1야당으로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던 70석의 평민당 위상은 크게 위축된다. 한편 구 민주당이 민정당과 합당하는 데 반대한 의원들은 무소속의원들과 함께 새로 민주당을 창당한다.
평민당과 민주당은 여소야대의 정당구조가 거여야소로 위축되는 기습 상황에 대해 그들 스스로 불가피한 통합 명분을 발견한다. 1991년 9월의 야권통합은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할 상대들 모두가 한 집안에 모여 같이 살 수 밖에 없다는 위기를 공감한 필연의 파생물이었다.
민자당의 거대한 몸집과 통합 민주당의 기형적 대결구도는 한 지붕 세 가족의 불편함과 왕성한 주인의식, 그리고 정치적 피해의식으로 무장된 다섯계파들의 동상이몽을 집약적으로 대변한다. 다섯 계파를?주도하는 각 수장들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1992년 말의 대권도전 기회를 향해 1년여 동안 자신들의 정치적 가용자원을 총동원한다. 아울러 이들의 치열한 경쟁구도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재야세력과 제도권 정당체계의 정통성을 전면 부정하는 혁신정당들은 다섯 계파들의 난맥상 위에 또 다른 날줄과 씨줄을 그으며 대권고지를 공략해 들어간다.
하지만 고지를 점령하는 길목에 버티고 있던 14대 총선은 어떤 계파들도 피해 갈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그리고 선거 결과는 또 다른 강한 의외성을 반영한다.
14대 총선은 민자당의 예상외 패배와 민주당의 개헌저지선 돌파실패, 그리고 국민당의 급부상으로 요약된다. 민자당과 민주당의 예상외 선거결과는 외형적으로 한국정치의?계파결정현상과 크게 배치된다. 한국정치가 [파벌 ? 계파]에 의해 결정·주도된다는 가설은 14대 총선결과를 놓고 보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이 ‘의외성’은 한국정치의 강한 계파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정치적 응징을 뜻할 뿐, 총선 결과가 미래의 계파구조를 크게 전환시킬 가능성이란 희박했다. 즉 92년 봄의 총선결과는 정치권의 적잖은 각성 계기였을지 몰라도 한국의 계파정치 자체를 붕괴시킬 만한 결정적 동인이 될 순 없었다. 여기서 한국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성장과 달리 정치권 내부에 살아있는 강한 계파성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14대 국회는 계파적 경향을 타파시키기보다 기존의 흐름을 더 강하게 활용함으로써 대권을 의식해야 했던 당대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