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④] 계파보스와 중간보스의 끊임없는 흥정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교수, <인맥으로 본 한국정치> <백정과 기생> 저자] 한국의 정치계파는?정치적 인간의 개인 욕망을 담는 공식 은신처로 기능한다. 조직이 보호하고 계파가?감싸는 동안 ‘정치적 인간’들이 품고 있던 욕망의 씨앗은?‘야망’의 살과 ‘변신’의 피를 공급받고 성장하기 시작한다. 욕망이 계파와?조직의 모체에 착상하는 순간, 그 생장 가능성을 확인한 모체(혹은 산모: 보스와 계파 조직)는 씨앗이 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고 피를 공급하기 시작한다.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생육의 대가는 보스에 대한 충성(효도)과 맹세로 확고하게 지불해야 한다. 일단 태어난 정치신생아는 조직과 계파의 생태는 물론 이를 감싸는 파벌의 생리와 생존 철칙을 계파?선배들에게 이어 받는다.
계파의 ‘비극의 싹’은 이때부터 새롭게 돋아나기 시작한다. 출발부터 계파 공동체의 구성원인 ‘나’는 자신을 길러주고 보호해 주는 보스가 얼마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 터득하게 된다. 동시에 ‘나’는 ‘나’?아닌 유사한 ‘나’를 다른 계파조직에서 발견한다. 거기서 ‘나’는 경쟁만이 정치적 생존수단이며 거기서 탈락할 때 자신의 생명은 끝난다는 또 다른 철칙을 처절하게 배운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할수록 ‘나’의 경쟁은 의심스러워지고 의심이 커갈 때 ‘나’는 승리를 위해 얼마든지 조직을 이탈할 수 있다. 나아가 계파를 배반할 수도 있다. 여기서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보스마저 저버릴 수 있다는 변신과 둔갑의 테크닉을 배운다.
변신하는 자들의 숫자에 따라 계파나 파벌이 해체될 수 있고 커질 수도 있다. 이것이 한국정치파벌의 첫 번째 특성이다.
잇따른 변신과정에서 유교적 전통이 강조하던 의리와 지조 혹은 정치적 절개는 하등의 제약이 되지 않는다. 이를 가장 먼저 강조하자면 ‘나’는 그저 미더운?인물은 될망정, 결코 승리의 쾌감을 맛보진 못한다. ?중간보스에 머물러야만 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중간보스 없이 계파와 파벌의 수장(首長)은 대권에 도전할 수 없다. 중간보스로 성장한?‘나’는 그래서 대권을 의식하는 수장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이내 치열한 공생관계를 이룬다. 권력획득 이후의 정치적 실익과 실질적 부가가치를 고려할 때 보스를 향한?‘나’의 충성과 정치적 맹세는 그만큼 강해질 수밖에 없다.
중간보스는 계파보스에게, 계파보스는 중간보스에게 서로 믿음을 보여줄 때 이들 사이에는 정치적 계약관계가 성립된다.
이때 형성되는 양자 간 이익교환은 단기간 유지될 수도 있고 평생을 갈 수도 있다. 계파에 따라 그 관계는 복잡한 모습을 띤다. 이들 사이에 오고가는 실질적 이익 가운데 압도적인 요소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정치권력지분과 그 배분을 둘러싼 나의 ‘몫’으로 귀결된다. 보스를 향한 ‘나’의 충성과 정치적 맹세라는 심정적·정의적(情誼的) 요소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획득할 수 있는 실질권력과 이를 위한 개인적 동기의 은폐 수단일 뿐이다. 아울러 자신의 정치욕망을 감싸주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불과할 따름이다. 정녕 끓어오르는 충성심과 자발적 복종으로 평생 한 인물을 좇는 경우란 드물다.
엄밀히 따지자면 계파 조직 내 정치적 인간들의 면종복배(面從腹背)와 양봉음위(陽奉陰違)의 행태가 모든 직업정치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한국정치를 계파들 사이의 경쟁 과정으로 볼 때 직업정치인들의 이중적 사고는 ‘정치’ 그 자체를 항상 복선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정치적 인간의 정체의식 부재와 대중들의 정치 불신을 조장하는 직접적 동인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적 인간들의?‘자기정체성’부재와 대중의 정치 불신은 한국의 정치변화를 전혀 예측할 수 없도록 유인했을 뿐 아니라 끊어질 듯?이어진 해방 후 정치폭력과 위기에 정치인 스스로 옳게 대응할 수 없도록 만든 주요인이 된다.
한국의 정치엘리트나 대중 모두가 미래의 정치변화를 예측할 수 없음은 곧 보스를 향한 정치적 의문과 자신의 정치운명에 관한 의구심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의문은 자신이 몸담는 계파가 어느 정도 실리를 얻을 수 있을지를 둘러싼 기대 효용과 자기 보스가 최종 권력의 쟁취자일 수 있는지의 정치적 손익계산과 맞물려 더 깊어질 수도 있다.
다른 한편, 대중의 정치적 관심은 오로지 누가 더 자신에게 유리한 존재인지로 맞춰진다. 즉 합리적 선택대상으로?‘나’는 권력접근이란 목표를 획득하는 데 우선의 관심을 갖지만 대중은 이와 관계없이 불확실한 선택자로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양자의 ‘불확실성’이 한국정치변화를 예측할 수 없도록 유인하며 이들 현상이 일상적이거나 상식을 넘어설 때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이 같은 상황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되는 계기는 해방 후 무수하게 반복된 직업정치인들의 계파이탈과 조직의 이합 그리고 ‘신 계파’?형성과정에서의 집산으로 압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