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⑤] 파벌문제 규명 위한 가설 4가지

조선시대사대당파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교수, <포르노는 없다> <조선은 법가의 나라였는가> 저자] 한국의 정치계파들이 경쟁한다는 사실 자체는 논란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니 될 수 없다. ‘정치계파성’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적(敵)과 동지(同志)의 확연한 구분아래 진행되는 게임의 과정이든,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든 뜻을 같이하는 그룹과 다른 그룹 사이에 이루어지는‘관계개념’으로 본다면 이들이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 서로 ‘무리’ 짓고 계파를 마련, 힘을 겨룬다는 사실 역시 극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파벌정치에 내재하는 근본 모순은 파벌과 파벌 간에 반복되는 끝없는‘이합·?집산’에 있다. 특히 이 모순은 정권 교체기나 충격적 위기 상황 속에서 더 깊어진다. 정치적 인간들의 이중성과 파벌의 한계가 겹칠 때 한층 기형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결국 한국 파벌정치의 모순은 정치권력의 ‘반민주·반민중’적 정치행태로 나타나며 집단의 극단적·폐쇄적 당파성을 반증한다.

계파의 모순은 한국정치의 또 다른 병폐들과도 강한 친화력을 갖는다. 계파의 폐쇄성과 배타성에서 비롯되는 지역주의와 인물중심주의가 그것이다. 상대 계파에 대한 배타적 사고와 타 지역 계파에 대한 폐쇄적 행태는 자파 구성원들의 맹목적 단결을 유도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파벌의 최고수장이 누구인가’라는 변수, 즉 사람을 보고 무리 짓게 만드는 중요한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유난히도?‘무리 짓기 political gathering’를 선호하는 한국정치인들은 일시적·잠정적 이해득실을 바탕으로 계파보스와 중간보스를 중심으로 편의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거나 흩어진 후 다시 모이는 일련의 과정을 거듭한다.

결국 누가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와 함께 움직이는지를 중심으로 정치적 인간들의 이동 행각을 집요하게 추적해 보지 않고선 한국정치의 경험적 분석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한국계파정치의 모순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해방 후 한국정치의 파행이 계파의 이합과 집산의 결과였다면 보스들의 파행적 계파운용은 무엇을 시사해 주는가? 그 같은 운용의 결과가 오늘의 한국정당구조와 정치계파로 나타난다면 그 정치적 의미는 뭘까? ‘여-야-재야’의 삼각구도 속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계파들의 정책내용과 이념 그리고 정치성향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계파를?운용·유지·확대해 나가는 내부 정치자원은 어떻게 동원하는가? 그것은 정치자금인가, 이념적 결속인가, 아니면 권력배분과 지분의 보장인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면 지역기반이나 학맥·혈연·지연에 의한 불가항력으로부터 비롯되는가? 이들 변수를 종합적으로 채택·동원할 수밖에 없는 게 한국정치계파의 근본 생리라면 이를 관리·조정하는 각 계파의 리더십 운영은 어떠한가?

결국 현 단계 한국 정당의 계파구조는 존속되어야 하는가, 해체되어야 하는가? 존속된다면 오늘의 정치적 한계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가? 해체된다면 그 공백을 메울 실천적·정책적 대안은 과연 뭘까? 한국의 정치계파는?현재의 모습을 타파하고 발전적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는가? 그 대안은 무엇일까? 한국의 정치계파는?앞으로의 정치변동방향을 결정할 주요 독립변수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민주화 노력에 의해 제도화될 것인가?

이 같은 물음에 답을 찾고 체계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네 가지 가설을 세우기로 한다.

  1. 한국정치는 정치계파가?결정한다. 정치계파는?대권장악을 위한 권력게임을 주도하고 대권 향배와 정치적 예상실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표류한다.
  1. 한국의 정치계파는?일정 파벌의 수장이 차지하는 정치적 비중과 그를 둘러싼 인맥을 중심으로 표류한다. 그러나 수장과 인맥 계파의 정치적 비중이 계파?구성원들에게 정치적 예상실익을 보상해 주지 못할 정도로 약해지거나 정치위기에 따라 감소할 경우 계파와??조직 간 이합집산이 시작된다. 이러한 현상은 해방 후 한국제도정치의 변화와 권력구조를 결정한다. 이는 특히 정치적 격변기와 정치폭력에 의한 권력교체기에 두드러진다.
  1. 한국정치의 발전 지체는 어느 한 사람을 정점으로 모인 정치적 인간들의?‘무리 짓기’에서 출발하며 그 ‘무리’의 해체와 재구성으로 끝난다. 정치적 ‘무리’를 존속시키는 요인은 매우 복잡하다. 대체로 자금과 인맥, 이념과 지역 토대 그리고 권력배분과 재생산 욕구, 보스의 리더십 등 여러 요인들의 복합적인 화학작용에 따라 결정된다.
  1. 시민사회는 한국 계파정치를 견제할 잠재력을 지니나 그 근본까지 파괴하진 못한다. 견제의 유일한 방법은 ‘투표혁명’이다. 시민혁명이나 사회혁명이 투표혁명을 대체하지 못하는 한, ‘표’를 통한 계파의 견제는 한국정치의 민주적 변화를 예고하는 제한수단에 불과하다. 한국정치의 비극은 여기서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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