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⑮] 김영삼-김대중, 전두환-노태우의 4색 계파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해방 후 정치계파의 양대 산맥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장악한다. 산맥의 높이와 폭 그리고 그 깊이의 지정학적 원류는 물론 그들을 길러낸 해방 후 1세대 여야 정치지도자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양김은 14대 대선까지 누구도 대권장악에 성공하지 못한 반면, ‘반군부·반독재’ 정권투쟁을 계속하며 자기 계보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정치적 한(恨)을 품는다. 양자의 한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게임의 룰도 배양된다. 둘은 어느 한쪽에게 유리한 정치적 상황이 곧 상대방의 패배와 직결된다고 인식할 뿐 아니라 자기 사람들 모두에게 이 같은 생각을 뿌리깊이 심는다. 게다가 각자가 차기 정권실세로 자기 이미지를 상상하는 동안, 계파 내 충성과 은총의 가치관을 위계화하는 데 성공한다.

정치적 한의 균형추를 움켜잡고 있었던 건 정치군부다. 군부와 양김은 끝없이 대립했고 서로를 폄하한다. 그 결과 군부는 군부대로, 양김은 양김대로 자기 계파의 씨를 뿌려 줄기는 엉키고 설킨다. 나아가 그 위에 새로운 홀씨가 세 계파구조 안팎에 얹히는 동안 한국 계파정치는 누구도 허물 수 없는 탄탄한 연결고리를 이룬다.

김영삼과 김대중,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 등 5인의 계파계보는 해방 직후 남북한 좌우익의 그것만큼 복잡한 조직망을 기반으로 삼는다. 이들 5인을 중심축으로 뻗어나간 계보는 4·19와 5·16, 5·17과 6·29에 이어 여러 차례의 헌법 개정 그리고 수차례 총선과 대선을 고비로 더 치열하게 변한다. 그러나 계파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이들 5인 보스를 정점으로 이루어진다. 수많은 정치적 인간들이 보인 권력 지향적 행태의 서로 다른 표현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그 함의 역시 의외로 단순하다.

모두가 대권도전에 성공하고 난 후에도 계파의 변화는 지칠 줄 모른다. 그것은 반드시 이들 5인의 영향과 조종의 결과가 아니었다. 예상과는 달리 계파들이 자생적 분화와 변이의 모습까지 보인 건 한국정치가 제도와 이념의 결과물이 아니라 공학(engineering)과 조작(manipulation)의 결과였음을 잘 말해준다.

이런 현상은 세기의 전환기를 거치면서도 바뀌지 않는다. 21세기로 진입한 다음에도 계파의 이합과 집산은 계속된다. 그래서 계파이동은 역사이자 현상이며 변수라기보다 차라리 고질적 상수(常數)로 이해할 일이다. 노무현의 급부상과 이를 견제하려는 신 야권의 세포분열, 그리고 ‘김대중-노무현’의 사멸 이후 설욕과 재기의 꿈을 다지는 후예들의 계파 재편과 ‘이명박-박근혜’의 등장은 밀레니엄의 한 세대 이합집산을 읽는 새로운 꼭짓점들이다.

무엇이 이들을 계파로 이끌었는가. 계파들의 생명은 어째서 그렇게 끈질긴 걸까? ‘번쩍거린다고 다 금이 아니듯’ 직업정치인들 모두가 계파 멤버는 아니다. 이것이 계파정치의 특성가운데 하나다. 철저한 충성 맹세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정치적 은총의 이익교환 행위. 그건 이 나라 정치계파의 핵심가치이자 한국정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담보물이다.

대권을 장악하려는 보스 한 개인의 욕망을 위해 내가 이용된다는 건 이 나라에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의리나 충성 맹세를 다짐하기보다 그가 실세를 장악할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지분을 바라보며 직업정치인들의 배반과 변신이 거듭된 지 오래다. 보스 개인이 급격한 노선변화를 천명하며 스스로 탈색·돌변해도 그에 매달린 식솔들은 아무런 이의 없이 보스에 추종하기까지 한다. 이런 기(奇)현상마저 한국정치현장에선 의아한 일이 아니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계파잔류 여부를 결정해 주는 변수는 곧 ‘챙길 수 있는’ 가용권력 정도다. 게다가 이를 지탱하는 정치 환경과 보스의 생명력을 분명히 가늠할 수 있는 한, 계파는 가시적 충성과 은총의 계약관계를 유지한다. 따라서 계약당사자들이 인지하는 이익의 양, 즉 권력지분이 늘 문제다.

한국의 정치 파벌사를 뒤쫓는 작업에서 군부계파의 맥은 부차적 의미만 지닌다. 5·16 이후 계파의 맥이 복잡했다 하더라도 이는 곧 후발 계파의 틀이 해방 후 여야 계파구조를 부분 활용?편승했거나 이를 역이용했다는 얘기다. 이점에서 계파의 뿌리는 군부 등장과 관계없이 뻗어나간다는 데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자긍심 역시 이같은 경험적 토대에서 출발한다. 자신들의 정치수업은 해방 후 정통야당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자부심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대중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정치군부와 자신들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논리다. 김대중의 동교동계와 김영삼의 상도동계는 6공말까지 파벌세력 판도에서 균형을 유지했고 또 합류할 수 없는 듯 보이는 호남파와 영남파로 구분된다. 양김 계파가 어떻게 오늘에 이르는지 추적해보면 그 원류는 2공화국의 민주당 신파와 구파에 맞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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