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 35] 92대선 패배 후 ‘정계복귀’ 김대중의 치밀한 전략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김대중의 정치재개를 암시한 사례는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방선거 전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 동교동계의 세 불리기다. 이미 지적한 대로 자신의 권력지분을 최대한 늘리고픈 정치본능은 직업정치인들의 오관(五官)을 무시로 자극한다. 두말 할 필요 없이 이같은 행태는 ‘입신양명(立身揚名)·호의호식(好衣好食)’을 위한 탐욕의 결과였다. 단지 이를 숨기고 대신 그럴듯하게 변명할 ‘핑계 만들기’만이 그들의 과업으로 떠올랐음을 모르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야권 계파 가운데 김대중의 당시 의중을 제대로 읽으려고 가장 원색적으로 노력한 우두머리가 누군지 정확히 파악할 길은 없다. 다만 이를 추론할 몇 가지 근거들만 갖고 있을 뿐이다. 당시 <조선일보> 허용범 기자는 ‘동교동계 세 불리기 다시 시작’(95년 2월5일) 기사에서 당시의 정치상황을 이렇게 헤아린다.

“민주당 동교동계의 세 불리기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당내 최대계보인 동교동계의 ‘내외연(한국내외문제연구회)’은 작년 후반기 대대적인 회원규모 확장사업을 벌인데 이어 이번에는 의원 확대작업을 시작했다. 이미 김덕규·홍기훈 의원 등이 가입의사를 표시했고 최근에는 조윤형·조홍규·김종완 의원 등이 정대철 고문의 가입요청을 받고 수락했다고 한다. 이들의 가입이 완료되면 내외연 소속의원은 총 60명. 민주당 의원 98명의 61%를 하나로 묶는 공룡조직이 되는 것이다.
내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자제 전까지 전체 당내 의원 중 3분의 2선(66명)까지 소속의원을 끌어올린다는 목표까지 세워놓고 있다. 일차적인 타깃은 개혁모임 의원 중 친DJ 성향의 의원들이다. 김병오·이해찬·이길재·임채정·장영달 의원 등 87년 대선 때 DJ 비판적 지지그룹을 형성했던 평민련 출신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때마침 개혁모임의 반DJ 성향에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을 이와 연관짓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이철 의원 등 중도적 성향의 의원들도 가입교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는 또 당내 입장으로 인해 내외연 가입을 꺼리는 의원들은 김대중 이사장의 아태재단 후원회에 가입토록 권유하는 방안으로 그물망을 치고 있다.
내외연 관계자는 세 확대에 대해 최근 들어 가입조건(이중계보 금지, 동교동적 선명성 등)을 완화한 데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전당대회문제로 관계가 매우 악화된 이기택 대표 측과 군소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다른 최고위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들은 내외연의 움직임을 8월 전당대회의 당권경쟁에 대비하는 세력결집이란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대표 측은 나아가 향후의 정계개편에 대비하려는 포석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드러내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의 정국의 가변성을 내다보면서 이 대표와 합당하기 이전의 자파세력을 한 울타리 안에 끌어 모으려는 작업이란 시각이다.”

지자체 선거 후 민주당이 쪼개져 ‘새정치국민회의’와 민주당 ‘잔류파’로 분할, 재구성된 사정을 고려할 때 이같은 분석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김대중의 원격조종은 외연적 이미지 자체가 여권의 그것과 달랐을지 몰라도 정치공학의 세계는 민자당 결성 당시 수장 3인의 합리적 선택과 궤를 같이 한다.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더라도 평생을 추종하겠다는 세력을 등에 업고, 아니 반대로 자신들이 섬기는 계파의 중간보스와 또 그가 떠받드는 최고 수장의 향배에 따라 이의 없이 헤쳐모일 수 있는 구성원들의 병적(病的) 정치통합능력은 이 나라 정치꾼들이 일관되게 보여 온 공통의 기질이자 기형의 신조였다.

즉시 통합이나 전략적 동거는 수장들 사이의 정치적 고려에 따라 얼마든지 서슴없었다. 계파 구성원들도 필요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거나 수장들도 정치적 판단에 따라 갈라섰다가 다시 부둥켜안을 수 있는 편리한 논리는 제로섬으로도 비유 가능한 변덕의 힘을 늘 일정량 은폐한다.

김대중에 대한 이기택의 평생 경원(敬遠)과 김영삼에 대한 김대중의 끈질긴 질투, 김종필에 대한 민주계 중간보스들의 정치적 ‘성가심’과 공화계의 점진적 설욕, 3·4공의 박해와 관계없이 15대 총선정국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김종필과 김대중의 전략적 공조, 필요하면 만나고 필요 없으면 등 돌리는 계파 수장들의 고질적 정치행태는 중간보스 이하 말단 모두에게까지 거침없이 학습된다. 뿐만 아니라 그 반복 주입과 생생한 체험논리는 15대 대선 때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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