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 37] 박근혜, 이승만~이명박 등 역대 정권 중 누구와 가장 닮았나?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한국의 역대정권이 범한 치명적 오류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입법부 스스로 정책개발과 집행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여 행정부를 견제하거나 새로운 긴장관계를 조성할 주체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행정부 역시 입법부의 이러한 만성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입법부 자체를 무시·배제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의 정치력을 상실한다.
해방 후 한국정당정치사는 크게 다섯 시기로 쪼갤 수 있다. 각 정권의 정치적 성격과 정권주도 인물에 주목한다면 시대구분의 단순화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다.
첫째 시간대는 8·15부터 4·19까지로 이승만과 자유당 집권기다.
둘째는 매우 제한된 시기로 장면과 민주당의 양원제 실시기로 상정할 수 있다.
셋째는 박정희의 민주공화당과 유신 후 10·26까지로 설정한다.
넷째는 82년 이후 전두환과 민주정의당, 그리고 88년 이후 노태우와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의 신군부 권력 연장기를 따로 다룰 수 있다.
다섯째는?김영삼(14대)과 김대중(15대)이 정권을 접수한 후, 노무현(16대)과 이명박(17대)으로 이어지는 세기의 전환기를 또 다른 문민제도화 시기로 범주화하는 방법이다.
제도권 정당들이 이 시간대 속에서 각기 어떤 정책들을 계발·실현했는지 분석하자면 정권별·시기별 국회제출 입법자료와 의안심의 내용들을 취합, 정당별 입안내용과 여야별 원내 대결논리를 광범위하게 추적,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야권이 보인 시대별 정책대안과 법제화에 얽힌 문제를 중심으로 정책입안의 좌절과 파행의 길을 종합적으로 해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해방 후 한국 정당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낸 계파성을 감안할 때 학문적 추적의 당위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국정당사에서 정책정당의 전환시기가 언제인지 역시 탐색의 얼개 찾기는 비관적이다. 하지만 한국정당의 정책 정당적 성격은 5공에 들어서면서부터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맹아적 변화 역시 획기적이진 않았다. 대부분의 정당이 해방 후 보수정당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한 만큼 5공 정당 역시 예외가 아니었고 정책대결의 폭과 깊이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보자면, 1·2공의 자유당·민주당 정당체계는 당의 정강·정책기준이나 법적 기반만 구비하고 국가건설과정에 필요한 정치적 대강만 마련했을 뿐 정책이라 부를 만한 내용은 제시·운용하지도 못한 채 파쟁에 휩싸인다. 3공 이후 민주공화당·신민당 역시 낡은 정치질서와의 단절을 표방, 새로운 정치질서의 구축을 시도하지만 결국 박정희의 조국근대화와 유신의 정치적 명분, 그리고 경제발전정책의 조속한 추진과 개발독재를 둘러싼 여야 대결구도만 심화시켰을 뿐, 정작 정책의 민주적 계발과 집행이란 목표달성엔 실패하고 만다. 특히 박정희의 지나친 입법부 견제욕구는 3·4공을 통틀어 정당의 위상을 격하시킨다. 한편 야권의 정치적 반발은 대안정책 제시보다 내부의 노선다툼이나 계파 간 헤게모니 쟁탈과정으로 왜곡·일탈해간다.
1공에서 4공까지는 따라서 정책정당의 성격보다 파쟁의 제도화란 측면에서 강한 친화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5공 이후부터는 상대적으로 낮은 파쟁과 정책정당으로의 미미한 전환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가 과거의 모순구조를 깨버릴 만큼 결정적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부분적 변화는 국민의 정치의식성장을 반증하는 한편 정당구조 자체가 양당제에서 이탈한 당시 정치상황과 직접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