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 36] ‘4·13 20대 총선’ 투표기준은 민생·정책 우선하는 정당에 둬야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단 한번의 승리로도 평생의 울분을 상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걸 걸고 덤비겠다는 베팅과 갬블링을 거울처럼 비춘다. 도전자의 상상 포만(飽滿)과 이를 기대하는 주변인물들의 예상실익이 여지없이 맞물림으로써 언젠가는 어느 한쪽이 반드시 져야만 한다는 강박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권력이 동원하는 복종효과와 이에 따른 소속 계파의 점진적 마비, 맹목적 충성과 수권(授權)의 강렬한 유혹, 다음 번 선거에선 반드시 승리할 것이란 자기 계파조직원들의 일방 격려와 집단최면 그리고 재출마, 기약 없는 투·개표와 간단없는 낙선의 재확인 등 진정으로 계파 수장들을 괴롭혔던 건 이번에도 ‘낙선했다’는 선관위의 최종통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다음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평생을 좇아다니면서 충성을 맹약하는 ‘정치식솔’들의 사후 관리와 정녕 당선될지도 모르리란 애매한 믿음의 싹이 다시금 고개를 쳐드는 순간순간이었을 것이다. 그건 견딜 수 없는 고통도, 피하고 싶은 유혹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매달려야 할 과업이었지 우아하게 포기하거나 점잖게 체념하지 못할 일이었다. 혹은 끔찍하기까지 한 허상으로 줄곧 밀고 당긴 매혹적 오류의 세계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괴로움’이라면 그조차 즐겨야만 한다는 주문은 그렇게 커져갔던 것이다.
해방 후 한국의 정치공간에는 숱한 정당들이 난립한다. 그러나 정당들 대부분은 ‘선거용’이었고 권력교체기의 수많은 이기적 존재들이 기대려 덤벼든 과시적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국민 다수가 기억하는 정당 이름은 몇 개 되지 않는다. 해방공간부터 오늘까지 국민들이 기억하는 정당은 한민당 이래 시대마다 정권마다 집권당과 제1야당 등에 머물 뿐이다.
정당 하나가 깨져도 내용물은 남고 외피가 바뀌어도 다른 계파가 부화(孵化)하며 신당이 잉태되는 맥은 한민당 이래 새누리당 집권기까지 계속된다. 일시적으로 나타난 다당화 현상은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의 정당선호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정당난립에 대한 유권자들의 혐오와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유권자들은 여야 모두의 극심한 당내 파쟁을 감 잡았고 그에 따른 환멸과 실망은 집권여당의 존재이유를 합리화시키거나 야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기반마저 무참하게 부셔버린다. 민주한국당도, 한국국민당도, 평화민주당이나 통일민주당도, 그리고 신민주공화당 등 우리의 기억 속에 아스라이 남아있는 그 많던 야권 정당들도 그렇게 무너졌고 또 잊혀져가는 중이다.
제도권 파벌의 정치·정책성향
해방 후 제도권 정당의 정책성향은 어떤 흐름을 탈까? 한국정치의 내면적 한계를 계파란 측면에서 다룰 경우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계파의 이합집산이 계속된 해방 후 정당정치사는 기본적으로 정책개발이나 실천을 위해 원내에서 순수하게 대결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단지 수권을 위한 대결과 원색투쟁만 지탱했다는 점에서 한국정당들은 정책과 별다른 친화력을 갖지 않는다. 계파의 존속과 유지, 더 나아가 권력획득만이 주요 목표였던 그간의 정치풍토에서 ‘정책’은 최우선이 아니었다.
따라서 특정정당이 정책이란 어휘를 사용하거나 이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울 경우 이는 철저한 명분이나 대외전시용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의 체계적 접근이나 실체 파악에서부터 언젠가는 실현·도달해야 할 목표에 이르기까지 깊이 고민하고 합리적으로 인식해야 할 계파 구성원들에게 정책은 처음부터 중요한 인식대상이 아니었다. 단지 계파 자체의 존속과 유지, 그리고 그 세의 확장 이외엔 어떤 관심도 없었다.